매일신문

[매일춘추] 시와 치유

정신적 외상(psychological trauma)이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사회나 개인을 정신병리적인 상태로 몰아넣을 정도의 강한 육체적, 정신적 충격 체험을 가리킨다. 이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동반하는데, 이런 경험은 사회나 개인을 지탱하고 있는 균형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때의 충격은 뇌에 각인되어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만 재연되면 동일한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다.

나는 젊은 시절 공사장 현장에서 안전 수칙 부주의로 리프트에 몸이 끼어버리는 사고를 당했다. 결혼 직후, 그 후유증으로 길을 가다 호흡이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실신했다. 극도로 몸이 쇠약해지니 환영과 정신착란,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누군가 방문을 열면 문을 통해 들어온 공기의 파동 입자가 소곤거리며 달라붙어 지옥도 그런 아귀지옥이 없는 듯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차츰차츰 시야가 보이지 않더니 두 눈꺼풀이 힘없이 내리깔렸다. '이젠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내 배꼽에서 풍선 바람이 빠지듯 '쉬이~' 하는 소리를 내며 온몸의 기(氣)가 다 새어 나가지 않는가. 일순 나는 마치 텅 빈 우주로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불현듯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의 에너지가 전신을 휘감았다. 하나 천지가 뒤바뀐 듯 엄청난 경련이 일어나며 사지를 찢어발긴다. 고통의 축제였다. 나는 다시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다. 이런 현상이 내 몸에서 일어날 때면, 빗물 떨어지는 소리도 환상곡처럼 들린다. 방의 평면과 입체 벽면이 순식간에 3차원 시뮬레이션처럼 심한 어질병에 사로잡힌다. 보이던 면이 갑자기 사라지다가, 공간이 휘어져 벽이 걸어오는 것 같은 착시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두 번의 수술까지 겹쳐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앓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와 같은 폐쇄 공간이나 지하에 들어가기만 하면 심한 호흡장애가 일어나 견디기 힘들었다. 우울증과 정신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신경정신과 약물치료와 함께 숲 속 산책, 명상, 기 훈련, 그리고 무엇보다 시작(詩作)에 몰입했다. 실제로 시 창작에 몰입하게 되면 어느 한순간 '환하게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나는 비로소 시에도 치유(치료)의 효과가 있음을 알았다.

시 치료(Poetrytherapy)란 무의식에 저장된 자신의 충격적 경험을 시작을 통해 정화해 가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병든 나에게 시 읽기와 시 쓰기는 외부와의 단절감을 극복하는 소통의 유일한 통로였다. 그뿐만 아니라.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은밀하고 내밀한 아픔'을 쏟아낼 수 있는 카타르시스, 아니 신명의 공간이 시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시의 진리에 몰입하는 순간은 '살아있음의 황홀경'이자 치유였다. 개인의 아픔뿐 아니라, 공동체가 당한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는 한 방편으로, 시 읽기와 시 쓰기는 큰 위안이 된다.

김동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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