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터 내리는 비에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한 듯하다. 봄비를 머금은 나무들은 푸르름을 더해 가지만, 자칫 큰 일교차에 감기 걸리기 쉬울 듯한 날씨이다. 지난 겨울 지독한 감기에 걸린 탓에 큰 고생을 하였다. 겨울방학을 한 아이들을 돌보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힘이 들었다.
어서 이 겨울이 지나가길, 감기도 빨리 낫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드디어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나 역시 감기가 나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개학 후 며칠 뒤 첫째가 새벽에 고열을 앓는 것이다. 학교에 독감이 돌고 있다고 하더니, 역시나 독감이었다. 병원에 가서 약 처방을 받고, 5일가량을 집에서 요양하였다. 주말에는 혹시나 싶어 동생들을 친정으로 잠시 보냈다. 큰아이는 열이 멈추는가 싶더니 기침을 심하게 하였다. 게다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많이 심심해하였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등굣날, 잘 참아준 아이가 너무 대견하였다.
한시름 덜었다고 여긴 그날 오후, 둘째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안과에 갔더니, 결막염이란다. 다행히 안약을 며칠 넣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휴~~~.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위해 저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막내가 울먹울먹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묻는 순간 심하게 토하기 시작하였다. 이제껏 세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심하게 토하는 건 처음 보았다. 온 거실 바닥이 구토물로 뒤덮이고, 놀란 첫째는 울기 시작하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걸레로 닦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이 도와주니 금방 치울 수 있었다.
다음 날 병원에 갔더니 장염이 의심된단다. 아니, 이럴 수가. 7년 전에 첫째, 둘째가 한꺼번에 심하게 열을 앓은 이후로 이런 적은 없었는데, 하늘이 노랗게 느껴졌다. 병원약을 며칠 먹고 난 뒤, 다행히 토하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음식을 거부하였다.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도 다른 음식들은 조금씩 먹었는데, 평소 자기가 좋아하던 음식뿐만 아니라 음식 자체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달래도 보고 혼내기도 했지만,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배가 고플 텐데, 대신 하루 종일 짜증을 냈다. 하루하루 점점 말라가는 아이를 보는데, 너무 힘들었다. 나 역시 독감에 걸려 입맛도 없고, 정말 무기력한 나날이었다.
친정 엄마와 함께 잘 아는 한의원에 데리고 갔더니, 전반적으로 장의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푹 쉬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하는 것이다. 큰맘 먹고 아이를 좀 쉬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열흘 정도가 지난 뒤, 아이는 거짓말처럼 음식을 입에 대기 시작하였다. 난 너무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 아이가 음식을 오물오물 씹는 모습이 그렇게 예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아직 예전만큼 잘 먹진 않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나아가는 아이의 모습에 절로 감사하는 맘이 들었다.
거의 한 달여 동안 우리 집을 스쳐간 약 봉투들을 치우면서 나 자신에게도 잘 버텨냈다고 칭찬해 주었다.
하루하루 힘들었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견딜 수 있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겐 당연할 수도 있는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건강한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가 최고의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감히 행복하다. 다가올 짙푸른 녹음 속에 뛰어놀 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벌써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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