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팔팔한 100세 시대] 일하는 노년들의 활기찬 현장

◆일하는 노년들의 활기찬 현장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는 데 나이가 있나요~."

가수 오승근은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에서 사랑에 나이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일하는 데 나이가 있나"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처럼 아직도 '팔팔한'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소득을 보충해주고 사회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구시와 경상북도,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조직된 시니어클럽이 협동해 노인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바로 노인일자리사업이다.

매일신문은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찾아 열심히 일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카메라 속 어르신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일하고 있었다.

글 사진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할머니 손맛 김밥 "맛도 좋아요∼"

대구 중구 메트로플라자 봉산육거리 방향 끄트머리에 있는 '마실김밥'에서 이귀자(70) 할머니가 김밥을 만드는 중이다. 이 할머니는 "같이 일하는 할머니들과 이야기하면서 김밥을 만드니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든다"고 말했다. '마실김밥'은 대구 중구시니어클럽이 어르신들과 함께 운영하는 분식점이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달 28일 오후 1시 마실김밥의 개방된 주방 안은 점심시간이 끝나가는데도 매우 분주했다. 이날 이 할머니를 포함한 마실김밥의 어르신 6명은 오전 9시에 출근해 단체주문용 김밥 300개를 만들었으며, 오후에도 단체주문 김밥 100개를 또 만들어야 한단다.

◆아파트 단지 어르신 택배 "신속·정확합니다∼♬"

류춘행(76) 할아버지가 대구 북구 침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배달할 택배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류 할아버지는 2011년부터 대구 북구시니어클럽에서 마련한 '어르신 택배' 일을 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 택배회사들이 물건을 내려놓으면 류 할아버지는 이 물건들을 작은 손수레에 실어 가가호호 배달한다. 류 할아버지는 "이 나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일찍 일어나 출근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사진 10 = 류춘동(76) 할아버지가 택배물품을 아파트 주민에게 전달하고 있다. 류 할아버지는 "어르신 택배가 배달하는 물품은 대부분 노인들이 들기에 무리가 없는 생필품이나 식료품들이라 그렇게 힘들지도 않다"며 "물건을 받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하거나, 더운 날에 물 한잔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류 할아버지는 "이렇게 일해서 번 돈으로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고, 더러는 손주에게 용돈도 줄 수 있다 보니 일할 때마다 보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우리도 바리스타, 커피 맛 보실래예∼

대구 남구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이천동의 '써니커피'(Sunny Coffee)는 대구 남구의 어르신들이 바리스타로 활동 중이다.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계시는 강경자(74)'이해옥(69) 할머니가 손님이 주문한 카푸치노를 만들었다. 이 할머니는 "나이 많은 사람이 바리스타를 한다고 젊은 사람들이 부담을 느낄 줄 알았더니 오히려 '어머니가 커피 만들어 주는 것 같다'며 젊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더라"고 말했다. 강 할머니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믹스 커피 이외에 다른 커피와 커피 문화를 배우게 된 것, 그리고 배운 것을 통해 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며 "자식들도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 좋아 하더라"고 말했다.

◆제2의 인생 "못 할 게 뭐가 있나요"

대구 달서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광고물 기획'제작 업체 '백세기획'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이 인쇄를 마친 현수막을 보여줬다. '백세기획'은 전국의 시니어클럽 중 유일하게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광고물 기획'제작 업체로 인쇄부터 배송까지 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작업을 어르신들이 직접 하고 있다. 한 회갑연에 쓰일 현수막의 문구처럼 이곳의 어르신들은 나이 60세부터 시작되는 제2의 인생을 열정과 변화로 채워나가고 있다. 이광태(75) 지사장은 "백세기획의 사훈이자 구호가 '변화로 도약하자'인데, 노인들의 '나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이 변하면 행동에 변화가 생기고 이것이 인생 제2의 도약으로 이뤄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읽어주니까 더 재미있지?

조동숙(75) 할머니가 대구 수성구 매호동 금별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숲의 가족'이라는 동화를 읽어주고 있다. 조 할머니는 대구 수성시니어클럽 소속으로 매주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조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조 할머니는 "아이들이 집중해서 동화를 듣는 게 느껴지면 나 자신도 힘이 생긴다"며 "때로는 그 힘 때문에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서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조 할머니는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면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잊힐 만큼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며 "주변에서도 나의 동화구연 활동을 보고 도전을 꿈꾸는 내 또래 할머니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금별어린이집 진정희 원장도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요즘은 집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에게 '오늘 동화 할머니 왔다 갔어요'라고 할 만큼 친해졌다"고 말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