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신뢰 위기 자초하는 문재인의 말 바꾸기

말과 행동의 일관성은 일반인도 지향해야 할 덕목이지만 정치인에게는 더욱 소중한 덕목이다. 그래야 유권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런 신뢰가 쌓여야 그냥 정치인에서 국민의 '정치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일관성 없는 언행은 정치지도자로의 성장 가능성에 심각한 회의를 제기한다. 본인에게는 물론 새정치연합 전체에도 불행한 일이다.

문 대표는 4'29 재보선 당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이)투표로 분열된 야권을 하나로 만들어 주셔야 한다. 야권표가 나뉘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패, 인사 실패, 부정부패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재보선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저희의 부족함에 대한 유권자들의 질책일 뿐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고 했다. 참으로 가볍기 짝이 없는 입이다. 어떤 기준에서 하루 만에 면죄부를 주는 것에서 아닌 것으로 바뀌었는지 국민은 헷갈릴 뿐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정부와 여당에 면죄부를 준 것인지 아닌지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라는 문 대표의 판단 역시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문 대표의 말은 선거 참패로 곤궁해진 자신의 입지를 방어하려는 수사(修辭)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문 대표의 말 바꾸기는 낯설지 않다. 문 대표는 2012년 대선 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했다. 그러나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모두 자신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었던 노무현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이다. 문 대표는 특히 한미 FTA에 대해서는 2011년 펴낸 자서전 '운명'에서 "미국에 주눅 들지 않고 최대한 우리 이익을 지켜냈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은 패배의 원인 파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패배한 이유를 모른다면 똑같은 잘못을 다음 선거에서도 되풀이할 수 있다. 이런 잘못이 쌓이다 보면 새정치연합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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