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준의 대담] 문국현 뉴 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대표. 전 창조한국당 대표

"연 2,100시간 일, 노동시간 줄여 지식 근로자 만들어야"

김병준 교수가 문국현(오른쪽) 뉴 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대표와 대담하고 있다.
김병준 교수가 문국현(오른쪽) 뉴 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대표와 대담하고 있다.

오래전, 시민운동을 하면서 문국현 당시 유한킴벌리 사장을 만났다. 기업의 전문경영인이 시민운동을 해? 이름이나 걸어 두는 것이겠지.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진지했다. 근로자와 기업, 그리고 국민과 국가 모두가 다 잘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길을 찾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했다.

실제로 그의 이러한 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큰 희망이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 해고해야 할 근로자와 회사 모두를 살리는가 하면, 윤리경영이 기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길임을 보여주었다. 또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로 대변되는 녹화운동 등,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가 같이 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시민사회는 이런 그를 17대 대통령 후보로 내놓았다. 실패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국가경영의 새로운 틀과 혁신의 메시지는 모든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지금, 오히려 더 강한 톤으로 우리의 귓전을 때리고 있다.

국제적 섬유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돌아간 지금도 그는 혁신의 끈을 강하게 당기고 있다. 뉴 패러다임 인스티튜트와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를 이끌며 우리 기업과 중국 기업의 혁신을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그가 그리는 세상 이야기를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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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신화: 다른 자본주의를 위한 대안

김병준: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다.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인데',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드는 감도 있다.

문국현: 그렇다. 큰 걱정이다.

김병준: 그래서 과거 유한킴벌리 사장 때 하신 일, 즉 근로자들을 해고하는 대신 생산성을 높여 근로자와 회사를 같이 구했던 일이 새삼 귀하게 여겨진다. 어떻게 한 건지 독자들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으면 한다.

문국현: 1990년대 들어 외국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그 결과 한때 80%였던 시장점유율이 20%까지 떨어졌다. 근로자의 반 이상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노사 간의 긴장도 높아졌다. 이때 근로자들을 해고하는 대신 낡은 생산라인들을 감축했다. 인력은 두세 조로 나누어 8시간씩 근무하던 것을 네 조로 나누어 8시간씩 근무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한두 조를 예비조 및 학습조로 더 고용할 수 있게 한 거다.

김병준: 한 조는 돌아가며 쉬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하면 인건비가 더 들어가지 않나?

문국현: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냥 쉬는 게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받게 했다. 육체 근로자들을 지식과 교양, 그리고 기술 및 주인의식을 가진 지식 근로자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 결과 산업재해는 줄고 품질은 높아졌으며, 신제품 개발의 속도도 빨라졌다. 결국 5년도 안 돼 시장점유율을 60%까지 회복했다. 1조원 매출 기업이 100조원 매출의 글로벌 기업을 이기는 기적이 일어난 셈이다.

김병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례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문국현: 이후 이 방식은 4조 2교대, 즉 두 조가 하루 12시간씩 4일간 일하고, 나머지 두 조는 그 4일을 쉬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세계적인 마케팅 전문가인 필립 코틀러가 최근에 쓴 책 '다른 자본주의'에도 새로운 시대를 위한 대안으로 소개되어 있다.

김병준: 대선 출마 당시 일자리 500만 개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이야기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냉소적이었다. 몇 개 회사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도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문국현: 다행히 독일이 국제적 규모로 이를 증명해 주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추진했고, 후임 메르켈 총리가 당은 다르지만 이를 그대로 이어받아 추진했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정부의 조직과 활동 그리고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재편성하겠다고 나섰다. 즉 그 모든 것이 고용을 늘리고 실업을 줄이는 쪽을 향하도록 했다.

김병준: 그 결과가 어떠했나?

문국현: 당시 독일의 고용률은 우리보다도 1%포인트 정도 더 낮았다. 그러던 것이 11%포인트를 뛰어 74%까지 올라왔다. 15.7%였던 청년실업률도 7% 이하로 떨어지게 되었다.

김병준: 독일이 제조업이 강해서 경제위기를 잘 버틴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단순히 그렇지가 않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 뒤에는 그만한 비전과 전략이 있었던 셈이다. 어떻게 했는지 좀 더 쉽게 설명을 해 주었으면 한다.

문국현: 예를 들어,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30% 줄였다. 임금도 그만큼 줄였는데, 그중 20%는 국가가 보전해 주었다. 국가로서는 해고된 사람에게 실업수당을 지불하는 것이나 일자리가 있는 상태에서 깎인 임금을 보전해 주는 것이나 부담은 같았다. 결국 근로자는 10% 임금 삭감에 일자리를 유지하게 되었고, 30% 줄어든 근로시간을 이용해 새로운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김병준: 90년대 초 폭스바겐의 일자리 나누기 경험 등이 있었으니 더 잘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문국현: 그렇다. 아무튼 이런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근로자들이 더 건강해지고 창조적이 되었다. 지식 근로자가 된 것이다. 마구잡이 해고를 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강할 수밖에 없었다. 1년도 안 돼 모든 것이 되기 시작했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일자리도 500만 개나 늘어났다. 당연히 1천300시간까지 줄었던 근로시간도 차츰 늘어났고 임금도 다시 오르게 되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김병준: 일자리 나누기라면 우리야말로 기회가 있다. 노동시간이 2천100시간이 넘는다. 그만큼 나눌 게 많다는 이야기이다.

문국현: 우리의 경우 전체 일자리가 2천500만 개 정도다. 이 중 제조업 등 1천500만 개 정도에 이 방식을 적용하면 아직도 20%, 즉 300만 개 안팎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줄어든 근로시간에 평생학습을 하게 하면 그에 필요한 고용이 또 늘어날 것이고, 또 이들 근로자들이 여행 등 여가생활을 하면 또 그만큼의 고용이 늘어난다.

김병준: 일자리를 나누고, 지식 근로자를 만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2천100시간 이상 일한다는 게 인간적으로 너무 딱하다.

문국현: 국제 규범에도 어긋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OECD는 1천800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김병준: 결국 그렇게 가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나누기가 힘이 드나?

문국현: 사용자와 노조 간의 상호불신 때문이다. 노조는 임금총액이 줄까 봐 걱정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많아지면 사람이 부족해진다. 그러면 노동자들의 바게이닝 파워, 즉 협상력이 강화될까 걱정한다. 그러니 긴 근로시간에 연간 19조원에 달하는 산재 피해를 내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 있다. 연간 10만 명이 다치고 2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김병준: 실제로 사용자는 근로자를 한 사람 더 늘어나는 것을 겁낸다.

문국현: 경제가 어려워지는 경우 해고하기 힘들면 독일처럼 임금을 일시적으로 낮출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김병준: 그런 점에서 국가도 문제다. 이를테면 독일처럼 깎인 임금을 보존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또 일시적으로 줄어든 근로시간을 이용하여 근로자들을 교육시킬 평생교육 체계도 제대로 못 갖추고 있다.

문국현: 국가운영과 정책의 기조를 대폭 재창조할 필요가 있다. 독일이 했던 것처럼.

김병준: 건설이나 토목 등에 쓸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고 혁신 기반을 다지는 데 써야 한다는 말씀 아니냐?

문국현: 독일의 경우 강한 지식경제 플랫폼으로 모든 규모의 기업이 전 세계를 향해 뛰고 있다. 초대형 기업은 아니지만 강한 기업, 즉 히든 챔피언들이 그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아니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표선수만 뛰고 있다.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세계로 나가는 능력이 퇴화되어 버렸다. 모든 근로자를 지식 근로자로 만들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기업이 세계를 향해 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병준: 여전히 세계시장에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그쪽을 향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문국현: 세계 경제의 볼륨이 10년 후면 GDP 기준으로 15조달러 이상 늘어날 것이다. 그중 중국이 10조달러를 가져가게 될 것이고. 그중 1조달러만 우리가 추가로 가져올 수 있으면 우리는 1인당 5만달러 소득의 국가가 된다. 일본의 의류회사 유니클로 하나만 해도 지금 16조원 매출의 회사를 2030년에 300조원 매출 회사로 키운다는 계획을 잡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더 많이 세계로 나가야 한다.

▷글로벌 기준으로 가자

김병준: 그렇게 되자면 지식 근로자를 만드는 일과 함께 글로벌 사회가 정한 윤리기준과 환경기준 등을 지키는 것도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갈 것 같다. 국가는 열심히 이를 이끌고, 또 지원해야 할 것이고.

문국현: 우선 반부패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구촌 차원의 약속인 글로벌 컴팩(Global Compact)이 이루어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것을 UN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UN 글로벌 컴팩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또 2010년부터는 ISO 26000으로도 채택되어 있다. 윤리적이지 않으면 사업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김병준: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에 얼마나 적극적인가?

문국현: 아직 머뭇거리고 있다. 우리가 배출한 유엔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운동이기도 한데 좀 그렇다. ISO 26000만 해도 자율적인 운동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강제규정이 될 것이다. 유럽은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머뭇거리다가는 글로벌 사회에 제대로 설 수 없게 된다.

김병준: 윤리적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옳고 그름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신뢰 강화 등 경쟁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문국현: 부패한 기업은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 자연히 근로자를 경영에 참여시킬 수도 없고 근로자나 협력회사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없다. 불신과 노사분규는 심화되고 기술개발은 늦어지고, 결국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김병준: 환경 부문도 그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것 같은데….

문국현: 그렇다. 이 역시 기준이 강화되고 있다. 이 역시 앞서 가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자동차만 해도 환경기준에 엄격한 차량이 연비도 좋다. 그만큼 더 고급화되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간다.

김병준: 최근 이러한 글로벌 환경의 변화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기업들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들의 혁신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나?

문국현: 뉴 패러다임 인스티튜트의 자회사 격인 민덱스와 피터 드러커 아카데미 그룹과 협업으로 하고 있다.

김병준: 중국이야말로 관시, 즉 인간관계와 접대를 중시하는 문화 등 부패가 만연할 수 있는 기반이 강하지 않은가? 어떻게 이를 넘어 글로벌 수준의 윤리경영을 할 수 있게 하나? 가능하기는 하나?

문국현: 중국 사람들의 관시는 서로의 목표와 꿈을 확인하며 도원결의하듯 맺어진다. 미래지향성이 있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문화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가진 지도자가 성장하기도 한다. 시진핑의 '중국몽,' 즉 차이나 드림이 호소력을 가진다. 꿈이 아니라 학연'지연을 과도히 중시하는 우리의 관계의식과는 다르다. 그래서 변화와 혁신이 우리보다 오히려 쉬울 수도 있다.

김병준: 더 당혹스럽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넘을지 걱정이다. 특히 비전과 전략을 가진 정치적 리더십이 없는 상태라 더 걱정이다.

문국현: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나라, 청렴지수가 40위 이하의 부패한 나라, 근로시간이 2천 시간이 넘는 노동착취 국가에 노사분규 국가, 또 더 나아가서는 지식 근로자가 부족해서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문제국가로 남을 수 있다.

김병준: 그럴 수는 없다.

문국현: 대한민국의 재창조가 시급하다. 메르켈 총리가 말한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국가의 모든 부분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세우기 위한 강력한 국민적 합의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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