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천 년 전 로마시대 정치철학자 세네카는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아빠들을 두고 한 말처럼 들린다. 직장에선 일이 바빠 아이 얼굴 볼 시간도 없다면서, 퇴근 후엔 고주망태가 되어서야 귀가한다. 어디 이뿐이랴. 우리 사회가 숨 쉴 구멍조차 없을 만큼 각박하다고 투덜거리면서, 자신조차 여기에 일조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지난해 여름 한 백화점 관계자에게서 "이 바닥에선 매출이 인격이고 실력이에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제아무리 성격이 모나고, 행동거지가 방정맞지 않아도 매출만 좋으면 유통업계에서 인정받는다고 했다.
지난주 대기업 영업관리직 사원과 커피숍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그는 자신의 고충을 털어놨다. 업무성과를 내고자 매장에서 윽박지른다거나 반대로 굽실거릴 일이 많다고 한다. 그가 한 말 중에 지난해 백화점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그는 "요즘 인성은 좋은데 업무성과가 나쁜 직원보다 성격은 못됐지만 성과가 좋은 직원이 인사고과에 높게 평가된다"고 토로했다.
가만히 듣다 보니 나의 흑역사(?)가 떠올랐다. 날짜와 시간도 또렷하다. 지난해 12월 16일 오전 6시, 출근을 위해 차에 시동을 걸려는데 사회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불안한 느낌은 언제나 정확했다. 경찰서로 가자마자 신문을 펼쳐보니 가관이었다. '도시재생 선도지역, 전국 8곳 선정'에 관한 기사가 서울지역 신문에는 한 곳도 빠짐없이 실렸고, 대구 언론사 한 곳에도 게재됐다. 낙종이었고 그날 경위서까지 썼다. 국토교통부 보도자료였지만 변명은 불필요했다. 어찌 됐건 결과는 '도꾸니끼'(혼자서만 낙종한 것을 뜻하는 기자들의 은어).
물 먹은 적도 있지만 물 먹인 적도 있다. 그렇다고 인정받은 바는 없었다. 하지만 낙종에 대한 추궁은 낙인처럼 강렬했다. 들춰내고 싶지 않은 이 창피한 이야기를 그에게 털어놨다. 그는 "사회는 잔인해요. 잘하는 건 당연하지만, 실수에 대한 응징은 가차없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인정과 추궁은 함께하는 개념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말이다. 대학 시절 학생에게 시원하게 독설을 날리는 한 교수가 있었다. 그 교수는 "칭찬은 부모가 자식에게나 하는 거야. 사회에선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 그러니까 지금부터 독설에 내성을 길러"라고 내뱉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교수의 말이 백번 옳다고 느끼지만, 반감은 든다. 현대인들은 이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각박하다면서 왜 잠깐이라도 서로 작은 부분이나마 서로 인정하는 여유를 보이지 않을까? 인성이건 업무성과건 하다못해 상대의 그날 차림새건 서로 인정하고 치켜세울 거리는 많다. 제발, 세상에 숨통 좀 틔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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