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론 새평] 날라리의 우국

1963년 서울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1963년 서울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부패와의 전쟁·카드가 부메랑 효과로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 상태

겉치레 외교 속 남북관계는 개선 안 보여

죽 쑤는 집권여당, 대안세력마저도 실종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1년 차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집권 2년 차는 세월호 침몰과 십상시 사건으로 날 새더니, 집권 3년 차는 성완종 리스트와 불법대선자금 사건으로 시작됐다.

내년부터는 슬슬 레임덕이 시작될 터이니 선거가 없는 올해야말로 뭔가 해볼 수 있는 마지막 해. 그래서 신임 총리를 내세워 느닷없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게다. 하지만 국면전환을 위해 던진 그 카드는 결국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취임 일성으로 부패척결을 외친 이완구 총리는 자기 자신을 척결하는 빛나는 업적을 남긴 채 쓸쓸히 공관을 떠나야 했다. 되돌아보니 이 정권에서 세운 총리나 총리후보는 전원 낙마했다.

김용준, 정홍원, 안대희, 문창극, 정홍원, 이완구. 특히 정홍원 씨는 후임자가 없어 낙마조차 못하는 바람에 '불멸의 총리'라는 영예(?)까지 얻었다. 총리 하나 제대로 못 세우는 정부라니, 얼마나 한심한가?

경제도 스텝이 꼬였다. 3.8%로 잡았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는 3.3%로 주저앉았다. 일각에서는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는 한국수출잠재력이 20년 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가계부채가 한 달 사이에 4조원이 증가하는 등 눈덩이처럼 늘어나는가 하면, 청년실업률은 11.1%로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를 기록했다고 한다.

하도 외유가 잦아 '외교'는 잘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순방의 성과라고 해봐야 사실 한복의 아름다움을 해외에 알린 것 외에 뚜렷이 잡히는 게 없다. 며칠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는 여야 한목소리로 정부의 외교전략 부재를 질타했다. 대통령이 남미에서 순방성과로 목감기를 얻어오는 사이에, 중국과 일본, 미국과 일본이 긴밀한 접촉을 가짐으로써 동북아에서 한국만 고립됐다는 지적이다.

남북관계는 어떤가? 이명박 정권 이후 남북관계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고, 관계의 냉각으로 북핵과 관련하여 무슨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도 아니다. 5'24조치로 북한이 22억달러의 피해를 입은 사이, 남한은 4배가 넘는 89억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경협이 중단된 이후 북한은 중국과의 교역 규모를 2배 넘게 늘렸다. '관계개선'도 못하면서 '통일대박'부터 외친다.

참여정부 시절 세계 26위까지 올라갔던 언론자유지수는 현재 67위로 떨어졌다. 물론 OECD 꼴찌 수준이다.

한때 우리나라는 언론자유국이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들어와 5년째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긴, 대통령 비판하는 전단 좀 날렸다고 압수수색에 구속영장까지 발부된다. 이런 것은 전두환 시절에나 있었던 일이 아닌가. 이렇게 퇴행은 사회의 곳곳에서 확인된다.

퇴행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이명박 정권은 하필 1차 산업(자원외교)과 2차 산업(4대강사업)에 국운을 걸었다. 수십조에 달하는 엄청난 혈세를 들여 기껏 정보사회를 산업사회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토대를 과거로 되돌렸다면, 박근혜 정권은 그 뒤를 이어 상부구조마저 과거로 되돌리고 있다. 이 정권 들어와 유난히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가?

문제는 집권여당이 이렇게 비전을 잃고 죽을 쑤는 데도 견제할 대안세력이 없다는 데에 있다. 이번 선거에서 들은 제1야당의 유일한 비전은 '주류 60대 비주류 40'이라는 권노갑 상임고문의 황금분할 이론뿐이었다. 이게 야당의 비전이라니, 얼마나 한심한가? 이런 야당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천정배 씨. 당선 일성이 재미있다. "호남정치 부활하겠다." 이게 야권개혁의 '비전'이란다.

'뉴DJ론'? 결국 권노갑이니 한화갑이니 하는 갑갑(甲甲)한 소리일 뿐이다. 한쪽에서 박정희로 돌아가니, 야당에서는 김대중으로 돌아간다. 퇴행에 퇴행으로 맞서겠다는 건가? 상황이 이러하니, 이미 잃어버린 10년에 더해 다가올 10년마저 고스란히 잃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요즘은 나 같은 날라리도 솔직히 나라가 걱정된다.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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