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6.6%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3.9%를 크게 상회했다. 올해 들어서는 1~3월 3개월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액(9조8천억원)은 2012년과 2013년의 연간 증가액(11조원대)에 육박한다.
저금리와 부동산경기 활성화가 주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금융 당국의 부동산대출 규제 완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전세 가격 상승에 따른 전세대출 증가와 정부의 부동산거래 활성화 대책으로 분양시장을 중심으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주택 관련 대출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다. 그 결과 지난해 늘어난 가계대출의 절반가량은 생계비 용도로 추정된다. 특히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 가계부채 증가분의 대부분은 생계비 성격의 부채여서 문제가 심각하다. 가계부채의 질이 그만큼 악성이라는 뜻이다. 몇 년에 걸친 가계부채 급증으로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 잔액은 1천89조원으로 GDP의 85% 수준에 달했다. 가계부채가 계속 명목 GDP 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으로 늘어난다면 박근혜정부 말기인 2017년에는 가계부채 규모가 GDP의 100% 수준인 1천3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가계부채의 성격을 지닌 영세 자영업자의 음성적인 부채와 우리나라만 독특하게 갖고 있는 전세보증금 부채까지 합치면 광의의 가계부채 규모는 훨씬 커지게 된다. 흔히 경제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데 제약을 주는 임계부채 규모를 가계부채나 기업부채는 GDP의 85%, 정부부채는 GDP의 90%로 보고 있다. 한국은 이미 가계부채가 임계치에 근접하고 있어 앞으로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금리와 부동산경기 띄우기에 편승한 가계부채 증가가 향후 금리 인상과 더불어 자산 버블로 이어진다면 또 다른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실례로 2000년 이후 금융위기를 겪은 국가(미국, 스페인, 아일랜드 등)의 사례를 살펴보면 가계부채 규모가 소득 대비 100%를 돌파한 시점 이후 2, 3년 만에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를 줄여왔으나 한국은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발표했던 2011년과 2012년에만 가계부채 증가율이 일시적으로 주춤했을 뿐 명목 GDP 증가율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최근 무디스나 S&P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들이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음에도 해법은 결코 녹록지 않다. 가계부채 문제는 십수 년에 걸쳐 누적되면서 발생한 사안인 데다, 경기상황, 고용, 부동산경기,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건전성 등 국가경제 제반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기간에 해결이 어렵고 금융 당국의 노력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조급하게 대응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해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도 필요하지만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저성장 고령화 진전 상황을 감안하여 우리 경제의 상환 능력을 웃도는 과도한 부채 증가는 국가 위기 관리 차원에서 선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개혁도 절실하다. 금리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일시 상환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비거치식 원리금 장기 분할상환 대출과 고정금리부 대출 비중을 꾸준히 늘려나가야 한다. 또한 은행권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2금융권의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방편으로 인터넷 뱅크 조기 허용 등을 통해 서민금융 대출시장의 원가를 낮추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금융대책과는 별개로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일자리 창출과 같은 가계소득 증대 대책과 사교육비, 통신비, 주거비 등 가계의 생계비 부담 완화 대책도 병행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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