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명의 '어무이·아부지'…달서구보건소 송귀순

퇴근길 늘 집 앞 노인정 방문, 20년 전 쌀 한 포대로 시작

대구 달서구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송귀순 씨가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비둘기아파트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대구 달서구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송귀순 씨가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비둘기아파트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어버이날 찾아뵐 부모님이 100분이 넘어요. 부모님이 많아 항상 든든합니다."

대구 달서구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송귀순(58) 씨. 그녀는 부모님 부자(?)다. 특별한 인연을 맺고 지내는 어르신들부터 주기적으로 찾아가는 노인정의 어르신들까지 100명이 훌쩍 넘는다. "제가 찾아뵙는 어르신들이 전부 '어무이'고 '아부지'죠. 항상 푸근하게 대해주시고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나니깐 어무이, 아부지 맞죠."

송 씨가 처음 '부모님들'과 인연을 맺은 건 20여 년 전. 서른일곱 살에 늦깎이 공무원이 되면서 송 씨는 나누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시작은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자신의 집 앞 노인정에서부터였다. 20㎏짜리 쌀 한 포대를 사들고 찾아간 노인정에서 자식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날 이후 송 씨는 매달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들고 어르신들을 만나러 간다. "스무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갓 서른이 됐을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셔서 저도 항상 외로웠는데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을 뵈니 저도 위로가 됐어요. 봉사라면 쑥스럽고 그저 어르신들 말동무가 돼드리고 밥 한 그릇 함께 먹는 게 전부예요."

지난 5일에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경남 창녕을 찾았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다. 20년 전 인연을 맺은 76세의 엄마는 거동이 불편해져 창녕 한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왕복 3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지만 송 씨는 양손에 두유와 사탕을 한 아름 들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꼭 찾아간다. 그렇기에 병원 사람들은 송 씨를 친딸인 줄 알고 있다.

송 씨에게는 '창녕 엄마' 외에 특별한 부모가 셋이나 있었다. 외롭게 홀로 지내던 탈북자 할아버지, 오랜 기간 신장투석을 하며 딸을 무척 얻고 싶어했던 할아버지, 가족 하나 없이 홀로 병원에서 지냈던 할머니 등 주변 사람들이 모두 친딸인 줄 알았을 정도로 정성껏 모셨던 분들이었다.

"창녕 엄마만 살아 계시고 세 분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한 분은 돌아가시며 비석의 자식들 이름 사이에 제 이름도 넣어주셨어요. 제가 친아버지로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저를 친딸로 여기신 것 같아요."

평생을 홀로 살다 돌아가신 백복경 할머니를 생각하면 송 씨의 눈은 지금도 촉촉해진다. 91세에 노환으로 돌아가신 할머니는 납골당에 붙여둘 사진 한 장이 없을 정도로 챙겨주는 가족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았다. 납골당에 할머니 사진을 붙여 드리고 싶어 고민하던 송 씨는 문득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만들어 주신 부채를 떠올렸다. 할머니가 직접 본인의 사진과 꽃으로 예쁘게 꾸민 부채를 선물했던 것. 덕분에 납골당에 할머니의 사진을 가져다 둘 수 있었다.

오늘도 송 씨는 퇴근길에 집 앞 노인정을 찾는다.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처럼 송 씨에게는 자연스러운 일과다. "요즘에는 부모님을 잘 찾아뵙지도 않고 심지어 아예 연락조차 끊는 자식들이 많더라고요. 부모님과 정을 나누고 대화를 하다 보면 스스로 얻는 게 많다는 걸 모르나 봐요.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는데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죠."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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