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범죄자와 어머니

미혼인 30대의 이 남성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IT 회사 연구원이었다. 평소 성실하고 근면한 직장 생활로 회사 내 평판도 좋았다.

사고가 터진 건 동료들과 회식을 한 뒤였다. 술에 취한 이 남성은 회식자리에서 홀로 빠져나와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회사 여자 후배 집 앞까지 직접 차를 몰았다. 함께 회식자리에 있었던 여자 후배는 30분 후에 자신의 집 앞에 도착했다. 이 남성은 후배를 보자마자 다가가 준비한 흉기로 위협해 승용차에 태워 인적이 드문 공터로 끌고 갔다. 차 안에서 여성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용을 쓰던 남성은 후배가 완강히 거부하면서 설득을 하자 스스로 그만뒀다. 하지만 부모의 자랑이었던 이 남성은 한순간의 판단 잘못으로 범죄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1심 법원은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기자가 이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2심 재판에서였다. 2심 재판부는 이 남성이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나이, 직업, 가정환경 등을 종합해 1심 양형이 너무 무겁다고 판단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가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자 방청석에 있던 한 60대 여성이 갑자기 일어나 재판부를 향해 부처님에게 하듯 큰절을 하기 시작했다. 입에서는 들릴 듯 말듯 '감사합니다'는 말을 되뇌며 법정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오른손을 바닥에 내린 후 왼손과 이마를 땅에 댔다. 손바닥을 위로 향했다. 눈물을 흘리면서 천천히 큰절을 계속했다. 재판부가 부처님이라도 된 듯 큰절에는 진실함이 배여 있었다. 방청객은 보기 드문 장면을 멍하니 쳐다봤다. 몇 차례 절을 할지 궁금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재판부가 "어머니, 돌아가세요"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어머니는 다섯 번을 마친 후에야 재판부를 향해 합장하고 법정을 빠져나갔다.

믿었던 아들이 범죄자가 된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어머니는 아들이 1심에서 구속형을 선고받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변호사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부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법정에서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자주 본다. 20, 30대 범죄자가 재판을 받을 땐 방청석에 있는 어머니는 단번에 표시가 난다. 아버지와 달리 표정이 일그러져 수심이 가득하고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범죄자도 어머니를 찾는다. 선고에 앞서 최후진술에서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면 거창한 범죄예방 교육보다는 어머니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게 범죄를 더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한 지인이 한 대학교에서 연 사랑의 엽서 공모전 대상 작품이라며 카카오톡으로 그 내용을 보냈다. '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이 내게 손을 내밀 때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나에게 밥 한 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서 불러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중략)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에도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셀 수 없을 만큼 잘못을 많이 저질러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이날만이라도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감사함을 마음 깊이 간직하면 갈등과 범죄가 줄어들지 않을까? 어버이날을 범죄 없는 날로 인식하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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