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닭장 안의 늑대

회사원 김 씨는 모처럼 회식을 했다. 취기가 제법 올랐는데도 그는 스스럼없이 자동차에 탔다. 그는 뒷자리에 앉아 "집!"이라고 외쳤다. 30분쯤 잤나 싶었는데 차는 집까지 알아서 도착해 있었다.

구글 등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이 개발 중인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이 가져다줄 미래상이다. 기술 수준만을 놓고 볼 때 자율주행 자동차는 벌써 상용화 문턱까지 왔다. 이달 초 미국 네바다주 정부는 자율운행 화물트럭 고속도로 시범 운행을 허용했다.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되면 그 여파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리운전기사라는 직업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운송회사들은 운전기사들을 고용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무인택시 등장에 따라 택시업계 역시 고용 안전지대라 할 수 없다.

기술 발전이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전망이 한때 득세했었다. 노동은 로봇에게 맡기고 사람들은 남는 시간을 여가 활동을 하며 지낼 수 있다는 달콤한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노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2008년 개봉한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월E'를 보자. 오염 때문에 황폐해져 인간들이 모두 떠난 지구에 로봇 월E만 홀로 남는다. 월E는 인간이 남긴 폐기물을 정리해 쌓는 일을 한다. 700년간의 기나긴 노동 끝에 로봇 월E에게 생겨난 것은 다름 아닌 '자의식'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다들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일자리 감소가 큰 원인이라고 본다. 일자리가 없어 돈 벌기 어려우니 너도나도 지갑을 닫는다. 생산기술의 발전과 물류 혁명으로 물자 공급은 전례 없이 늘고 있지만 이를 소비해 줄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은 날로 나빠지니 경제가 구조적으로 침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술에 '윤리'와 '도덕'이 있을 수 없으며 그 뒤엔 자본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자유 경쟁 및 규제 철폐가 만사 해법'이라는 기치는 순진하거나 음흉한 어젠다이다. '닭장 안의 늑대'라는 말이 있다. 닭과 늑대를 한 공간에 넣어 두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일까. 적절한 통제 없이 폭주하는 기술과 자본은 실업자의 양산과 부의 편중을 불러 종국에는 전체 시스템을 위기에 빠트린다. 위정자들이 '무분별한 규제 철폐론'보다 '착한 규제'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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