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때가 이르렀다. 마음은 휴식을 원하고
추억은 빗물처럼 가문비나무 속잎을 적신다
그렇다, 우린 필요한 만큼 흘러가버린 강물 끝에 남아
어느 날엔 서로를 위로하며 노래해야 하리라
주어진 햇살을 짧고 애증은 습관처럼 길고 완강하다
오래도록 우린 그런 아포리아를 무시해 왔다
오래도록 내 피로하고 빈약한 영혼은
순수한 만남이 깃든 노오란 우산 속을 꿈꾸었나니(……)
그래 이곳에선 휴전이란 불가능하다
확실한 것은 죽음과 고통일 뿐
그리하여, 우리를 끝없이 지치게 하는 삶이 남아 있을 뿐
그러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늘 긴급소환인 것을
그대여, 차갑고 완벽한 아픔의 추억일랑
차라리 잃어버린 공간만큼 비워주고
다시 비바람치는 그 거리에 서자
이제 산 자에게도 축복의 눈길을 건네기로 하자
그대여 때가 이르렀다, 마음은 평화를 원하고
우린 잠시 기도하며 나무처럼 강 쪽으로 기울어간다
(부분.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민음사. 1990)
니체가 자신의 책 한 귀퉁이에 "나는 내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메모했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시인은 "잃어버린 우산"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순수한 만남이 깃든 노오란 우산"은 우리가 되찾아야 할 낭만의 자리인가 아니면 버려야 할 낡은 잔재인가?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언제나 답을 찾을 수 없는 아포리아들로 가득 차 있다. 데리다의 말처럼 그 우산의 정체에 우리의 정신을 내어주는 것은 어리석고 이제 낡았다. 이 시의 시인은 같이 죽지 못하고 '그때' 살아남은 자로서의 슬픔을 노래한다. 이 시가 써졌을 1980, 90년대라면 우리는 "다시 비바람치는 그 거리에 서자"에 감정의 절정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우산인지도 모두 잊어버린 지금, 한쪽으로 비워낸 공간에 남겨진 그 "차갑고 완벽한 아픔"에 더 눈길이 쏠린다. 깨어지지 않는 아픔, 분할 할 수도, 태워버릴 수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완벽한 아픔. 그건 분노의 마음이 아니라 평화의 마음이 가져다주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사랑일 것이다. 지금도 비는 내리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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