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출신인 이영호(가명'63) 씨는 숫자에 별로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숫자만 나열돼 있는 재무제표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 중이지만 그냥 세무사를 믿고 직원에게 맡겨 놓는 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 깜짝 놀랄 말을 들었다. 자신이 회사에 갚아야 할 돈이 5억원 정도라는 것이다.
'회사에 전 재산을 쏟아부어 갚을 돈도 없다'는 이 씨는 회사 돈을 빌린 적도 없는데 5억원이나 갚아야 한다니 당황했다. 한눈팔지 않고 중소기업 경영에 올인한 이 씨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재무제표를 보면 기업의 실체가 보인다
재무제표는 기업의 과거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을 통해 기업의 실체를 읽을 수 있고, 미래를 볼 수도 있다. 찬찬히 뜯어보면 기업이 튼튼한지, 이익은 잘 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경영자라면 자신이 대표로 있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한다. 자산과 부채, 이익의 실체 등이 모두 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씨처럼 의외로 많은 경영자가 자기 기업의 재무제표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큰일 날 일이다. 바로 이 씨처럼 '가지급금'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빚을 떠안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무제표는 기업의 현황을 숫자로 표시한 것으로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등으로 구성된다.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는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먼저 재무상태표는 특정 시점에서의 자산과 부채를 표시한 것이다. 특정 시점이라 함은 결산일을 의미하는데, 예컨대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12월 31일로 재무상태표를 작성한다. 재무상태표만 보면 기업이 얼마나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빚은 얼마나 지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손익계산서는 특정 시점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기업의 매출액과 비용, 이익 등을 표시한 것이다. 손익계산서를 보면 기업이 한 해 동안 얼마나 장사를 잘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어렵지도 않다. 이 씨 회사의 재무상태표를 보니 유동자산 항목에 가지급금 4억8천500만원, 이렇게 표시돼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자산이지만, 대표인 이 씨 입장에서는 빚이다.
◆가지급금은 반드시 갚아야 되는 돈이다
기업에서는 돈이 지출되면 반드시 증빙자료가 있어야 한다. 대표이사나 종업원의 임금으로 지급됐을 수도 있고, 기타 다른 비용으로 지출됐을 수도 있지만 지출 항목이 정해져 있고 관련 증빙자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끔 대표이사가 아무런 지출 항목도 없고, 또한 증빙자료도 없이 돈을 가져가기도 한다. 이 돈이 가지급금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표이사에게 돈을 빌려준 것으로 처리한다. 빌려줬으니 기업에서는 반드시 받아야 하는 돈이다. 이런 경우 대표이사가 돈을 갚는다고 억울할 일도 없다.
그런데 이 씨의 경우 자신은 지금까지 증빙자료 없이 기업의 돈을 한 푼도 가져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5억원 가까운 돈을 기업에 갚아야 한다니, 억울할 만도 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유는 이 씨가 재무제표를 꼼꼼히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씨 회사에서 가지급금이 생긴 이유를 분석해보니 현금 지출은 있었지만 증빙자료를 챙기지 못했고, 영수증이 없으니 세무사는 대표이사가 돈을 가져간 것으로 처리한 것이다. 만약 결산 전에 재무제표를 꼼꼼히 챙겼다면 가지급금이 생긴 원인을 미리 파악하여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가지급금이란 게 고약하다. 한 번 발생하면 반드시 돈으로 갚아야 한다. 실제 돈을 가져간 적이 없더라도 세무당국에서는 돈을 가져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회사를 폐업하더라도 가지급금은 갚아야 한다. 현금으로 갚지 못하면 대표이사에게 상여처분을 하여 그만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세금이 상당하다. 그리고 갚기 전까지 세무상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가지급금을 해결할 뾰족한 묘수는 없다
이 씨가 가지급금 4억8천500만원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돈으로 갚는 방법밖에는 없다. 가끔 가지급금을 다른 계정과목에 숨겨놓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을 부풀려 숨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위험천만한 방법이다. 세무조사 때 적발되면 그야말로 세금폭탄을 맞는다. 따라서 이 씨의 경우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가지급금을 해결해야 한다. 당장 현금이나 다른 재산이 없는 이 씨는 막막하기만 하다.
돈이 없는 이 씨가 가지급금을 해결하는 방법은 먼저 급여나 상여금을 인상해 이 돈으로 갚을 수도 있다. 아니면 기업의 이익금을 배당하고, 주주인 이 씨가 배당금을 받아 이 돈으로 갚을 수도 있고, 퇴직금 중간정산을 하여 가지급금을 정리할 수도 있다.
퇴직금 중간정산은 내년부터 금지된다. 가끔 대표이사가 자신의 주식을 법인에 매각하는 자사주를 통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는데 조심할 일이다. 세무상 문제가 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최창희 기자 cchee@msnet.co.kr
도움말=계명대 산업경영연구소 재무상담클리닉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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