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바람의 자식

"쿵쿵, 쿵쾅쿵쾅, 쿵쿵쿵쿵쿵."

둔탁한 울림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또 시작이다." 한숨이 났다. 감기 때문에 콜록거리다가 겨우 잠든 아이가 뒤척인다. 간신히 재운 아이가 행여 깰까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은 없다. 그저 짜증 나는 저 울림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할 수밖에. 30분이나 계속되는 소음에 참다못해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길 여러 번. "에이, 좀 더 참아보자." 깊은숨을 내쉬고 마음을 다독였다. 한참을 기다리니 가슴을 졸이던 소음도 꽤 잠잠해졌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쿵쾅거리는 윗집 소리에 신경이 거슬린다. 내 아이는 마음껏 집안에서 뛰라며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왔는데, 남의 아이가 뛰는 소리가 이렇게 거슬릴 줄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윗집이라고 마음이 편할까 싶다. 윗집 엄마도 "뛰지 마!"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 것이다. 뛰는 집이나 듣는 집이나 스트레스 받기는 매한가지다.

층간소음은 아이들이 쿵쾅거리며 뛰는 소리가 대부분이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갈등 1만1천144건을 분석한 결과, 아이들이 뛰거나 걷는 소리가 71.6%(7천977건)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망치질 482건(4.3%), 가구 소리 346건(3.1%), TV 등 가전제품 311건(2.8%) 순이었다.

애들 뛰는 소리가 문제라지만 아이들이 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을 두고 '바람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아이들은 휙휙 달리고 방방 뛰면서 성장한다.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감각발달과 운동발달, 인지발달이 동시에 조화롭게 이뤄진다. 이 중 한가지라도 더디게 되면 발달 전체가 늦어지게 된다. 추운 지방에서 아기에게 몇 겹씩 옷을 껴 입히는 경우 전체적인 발달이 늦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몸의 평형과 움직임을 감지하는 전정감각이 자극을 받으면 어린이 뇌와 정신발달에 도움이 된다. 펄쩍펄쩍 뛰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평형감각을 기르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면서 다리 근육과 순발력도 키운다. 아이들에겐 뛰는 행동 자체가 놀이이자 성장을 위한 노력이다. 마땅히 뛸 공간이나 시간을 주지 않고, 무조건 뛰지 말라고 화를 낸다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환경부가 내놓은 층간소음 대책은 아이들의 발달과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환경부는 층간소음 사전예방 교육인 '어린이 맞춤형 층간소음 예절교실'을 운영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아이들이 뛰거나 시끄럽게 굴지 않도록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교육용 동영상을 보고 뛰지 않는다면 엄마의 목이 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뒤돌아서면 또 뛰는 게 아이들이다.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지도 않고, 인내심이 어른만큼 깊지도 않다.

아이들이 집에서 뛰지 않게 하려면 낮에 밖에서 바람처럼 날아다니게 해주면 된다. 유치원이나 학교, 학원을 뱅글뱅글 도는 아이가 바람의 자식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낮에 마음껏 뛰어다닌 아이는 해가 지면 곯아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건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맞벌이 부부라면 더욱 불가능한 미션이다. 따라서 학교나 보육시설도 운동장에 아이들을 풀어줘야 한다.

이웃과 갈등이 풀리지 않는다면 직접 만나 싸우기보다는 공식적인 창구를 이용해보는 게 낫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가 대표적이다. 이웃사이 콜센터(1661-2642)를 이용하거나 국가소음정보시스템 홈페이지(www.noiseinfo.or.kr)에 접속해 민원을 접수하는 방법도 있다.

이런저런 방법도 있지만 층간소음에서 벗어나려면 이웃 간의 양보와 배려가 최우선이다. 내 아이 기죽는 게 싫으면 밖에서 뛰게 하고, 집에서는 잘 달래야 한다. 아랫집은 남의 아이 괴롭히지 말고 조금 더 이해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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