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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신문 연재소설은 왜 지면에서 사라졌을까?

김말봉
김말봉

1972년 호스티스 출신 여성이 주인공인 '별들의 고향'이 조선일보에 연재되자 그 반향은 엄청났다. 당시 술집에 근무하던 아가씨들이 소설 여주인공 '오경아'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이름을 '경아'로 바꿨는가 하면, 젊은 세대들은 자유분방한 이 발칙한 소설에 환호를 보냈고, 보수적인 중년층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어쨌건 실질적 이득은 조선일보가 챙겼다. 조선일보 측은 '별들의 고향' 덕분에 사세를 확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발행부수를 급증시켰다.

신문 연재소설이 신문의 발행부수 급증으로 연결된 것은 '별들의 고향'이 처음은 아니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신문이 1840, 50년대에 그리고 일본의 신문이 1800년대 말 무렵 연재소설을 도입한 목적은 거의 동일했다. 발행부수, 즉 경제적 이익 때문이었다.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번안소설 '장한몽'의 원작 '곤지키야샤'(金色夜叉) 역시 요미우리신문에 연재돼 신문의 발행부수를 급증시킨 작품이다. 연재소설의 성공이 곧 신문의 발행부수와 연결되자 모든 신문사들이 흥행성 있는 작가 섭외에 힘을 기울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문 연재소설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기만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물론 살인, 치정, 배신 등 독자들의 시선을 확 끌어들일 정도의 선정성과 자극성이 필수적 요소이기는 했지만,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은 '윤리와 도덕'의 준수였다. 악은 징벌되고, 부정은 교정되며, 더러움은 정화된다는 기본적 규칙이 소설의 기저에 흐르고 있었다. 여기에 시대의 정치적 목적, 예를 들면 식민지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 제국의 의도 같은 것이 항상 첨가되고 있었다.

식민지 시기 동안 신문에 발표된 인기 연재소설 가운데 김말봉의 '찔레꽃'(1937)은 이러한 도식을 아주 잘 갖추고 있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 소설은 8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순수한 여학생 정순은 부호 조만호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음욕, 계획적 강간시도, 질투, 치정살인 등 말 그대로 신문 앞쪽 지면에나 나올 법한 모든 잡스러운 일을 겪게 된다. 소설은 정순이 이 모든 부도덕한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이 정한 순수한 길을 꿋꿋이 선택하는 것으로 끝난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발행부수는 부수대로 올리면서도 윤리적 결말을 통해 신문의 '사회적 목탁' 역할은 그대로 지켜낸 것이다.

이처럼 신문 연재소설은 신문 발행부수를 올리는 데 일조했고, 신문은 가난한 조선의 현실 속에서 그 나름대로 문학이 존립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신문과 문학은 힘든 시절을 함께 이겨온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연재소설이 신문에서 사라져버렸다. 물론 이것이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중앙지부터 지방지에 이르기까지 연재소설이 제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일간지들은 왜 그렇지 않아도 소설의 위기라는 말이 나도는 이 힘든 시대에 오랜 전우였던 소설로부터 왜 먼저 손을 거둬버린 것일까. 신문 연재소설이 이제는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신문은 그 오랜 전우의 손을 계속 잡고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정혜영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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