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잇단 우승 헹가래…부활 기지개 켜는 고교야구 대구 명문들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피칭 연습을 하고 있다.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피칭 연습을 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대구 고교야구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10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대구고가 군산상고를 꺾고 우승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 2011년 대구 상원고가 고교야구 주말리그 후반기 왕중왕전인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했다. 또 대구 경북고는 지난달 열린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서울 장충고를 10대 1로 꺾으며 34년 만에 우승기를 거머쥐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3월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있었던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 결승전은 대구 상원고와 대구 경북고가 올라 옛날 '경상전'을 떠올리는 승부를 펼쳐 대구 상원고는 우승을, 대구 경북고는 준우승을 했다.

이처럼 빛나는 성과를 올리며 대구 고교야구는 부활하고 있는 중이지만 정작 대구경북지역민의 관심은 정말 저조하다. 사실 "고교야구가 죽어 있다"라는 표현은 이미 식상한 구문이 된 지 오래다.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 이때 고교야구에 대한 열기를 프로야구로 돌리기 위해 고교야구의 중계와 보도를 축소시키라는 압박을 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1970년대 그 뜨거웠던 고교야구의 열기가 프로야구로 옮겨간 이후 고교야구는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렸다.

◆주말리그, 성급했던 도입

고교야구를 주관하는 대한야구협회는 2011년부터 고교야구 주말리그를 도입했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선수를 키우고 너무 많은 대회 출전으로 선수들이 혹사당하는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 도입됐지만 고교야구 감독들을 포함한 야구계에서는 리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크게 지적하는 문제는 '선수를 키울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사실이다. 현재 고교야구는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한 팀당 한 경기만 열린다. 연속전이 없는 상황에서 투수를 포함한 선수들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한 경기를 하고 나면 주중은 공부와 훈련으로 보낸다. 충분한 휴식이 주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충분한 휴식이 '주전 독점 구조'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대구 상원고 박영진 감독은 "지금 고교야구는 10명의 주전만 혹사시키면 운영이 가능한 구조"라며 "이런 구조로는 다양한 선수의 능력과 기량을 키우는 데에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작전도 쓸 수 없게 된다. 대구 경북고 박상길 감독은 "다른 선수들의 기량이 올라오지 않으면 다양한 작전을 쓸 여지도 줄어들게 된다"며 "이는 선수들이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지 못해 기량을 키울 기회를 놓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경기를 주말에만 열어 고교야구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겠다는 목표도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공부는 기초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고교야구 선수들은 중학교 때까지 공부보다 운동에 훨씬 집중하는 이른바 '엘리트 스포츠인'의 길을 걸어온 상황에서 고등학교 공부를 따라가기가 상당히 버겁다. 게다가 각 시'도 교육청뿐만 아니라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와 같은 정부 중앙부처에도 고교야구 선수들의 교과목 학습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대구고 권영진 감독은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특기자'라는 명목으로 학습권 보장이 전혀 없었는데 선수들이 무슨 수로 일반 학생들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라며 "운동부 학생들에게 퇴로를 막아버린 것을 깨닫지 못하는 정부정책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고교야구에 주말리그 도입은 성급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차라리 초등학교 리틀야구단부터 리그제도를 도입한 뒤 상위 학급으로 점진적으로 도입했다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선수가 나왔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문경 글로벌선진학교의 실험

경북 문경시의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는 현재의 고교야구 상황에서 가장 독특하게 운영되는 팀이다. 학력인정 국제형 대안학교인 글로벌선진학교는 지난해 고교야구부를 처음 창단해 현재는 2학년 13명, 1학년 9명의 선수들이 뛰고 있다. 이 학교의 야구부 선수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해 오후 9시쯤 훈련을 끝낸다. 이후에는 자율적으로 공부나 훈련을 한다.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의 운영시스템은 맨 처음 야구계가 고교야구 주말리그를 도입했을 때 기대했던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고교야구단 운영형태이기도 하다. 글로벌선진학교 김혁섭 감독은 "선수들 중 일부는 학교에서 학업성적이 수위권을 다투기도 한다"며 "훈련량과 실력이 타 학교보다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타 지역 고교팀과의 경기에서 이기기도 하는 등 나름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선진학교가 중학교 과정까지 갖추고 있는 대안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중학교 과정에서 야구를 배운 선수들이 고등학교에서도 똑같은 시스템으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다. 게다가 야구부 운영지원금이 대부분 학교 재원과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내년까지 지원해주는 신생팀 지원금으로 충당된다. 학교 차원에서도 선수들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김혁섭 감독은 "야구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대학 진학이나 프로야구 진출이 가장 큰 목표이겠지만, 지금의 운영 방식이 잘 이뤄진다면 야구 선수 이외에 야구를 이용한 다양한 진로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학 진학과 프로야구 진출 이외에 별다른 길이 없는 현재 고교야구의 현실에서 글로벌선진학교의 야구부 운영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문제는 고교야구 선수들이 대학 진학 또는 프로야구 진출을 위해 공부보다 야구 훈련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글로벌선진학교 방식의 운영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체육특기자 운영시스템을 고민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고교 야구부는 결국 기존의 운영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존의 운영방식이 성적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어떤 방식이 옳은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김혁섭 감독도 "내가 알기로는 다른 고교의 감독들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식의 야구부 운영을 하고 싶어 하지만 현재의 고교야구 구조에서는 할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선진학교는 지금의 실험을 계속할 예정이다. 만약 글로벌선진학교의 운영방식이 고교야구에 통해 좋은 성적을 낸다면 분명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혁섭 감독은 "앞으로 열릴 각종 전국대회에서 16강 안에 든다면 분명 우리 방식이 성공적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야구에 봄이 오려면

고교야구 감독들은 "고교야구의 부활을 위해 일단 떨어진 관심부터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운영의 측면을 포함해 동문들을 포함한 학교와 지역사회의 전폭적인 지지, 그리고 제도의 정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경북고 박상길 감독은 "성적이 꾸준하게 나오는 수도권 고교의 경우 동문들이 지속적으로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다"며 "성적이 떨어진다고 지원을 줄일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원해 일정수준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구고 권영진 감독은 "체육특기생 선발 제도부터 프로야구 드래프트 제도까지 고교야구가 한국야구의 기본 토양이라고 생각하고, 가꾸고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2차 드래프트 일정 조정과 체육특기생의 대입 정시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등 야구계와 교육계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고교야구 감독들은 언론이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대부분의 고교야구 대회가 예로부터 신문사 주관으로 열렸던 데다 주말리그 도입으로 대붕기를 포함한 지역신문이 주관하는 대회는 거의 다 사라진 탓에 언론이 고교야구에 손을 뗀 듯한 인상을 준 탓도 크다. 대구 상원고 박영진 감독은 "야구계가 언론에 역할을 주문하는 이유는 야구계의 노력만으로는 고교야구의 붐을 일으키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며 "고교야구에 대한 다양한 보도와 경기중계와 해설을 통해 유망주를 보여주고 고교야구의 재미를 불러일으켜 준다면 고교야구도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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