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元)이 명(明)의 주원장에게 밀려 몽골 초원으로 돌아가 북원(北元)을 세운 이후 몽골 초원은 내몽골 외몽골 서몽골 등 3개 부족이 할거(割據)하고 있었다. 이 중 내몽골은 청(淸)에 처음부터 굴종해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자치구가 됐다. 뒤늦게 내몽골과 동일한 노선으로 돌아선 외몽골 역시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서몽골은 청의 복속 요구에 끝까지 저항했다. 그 결과 서몽골은, 청의 관찬(官撰) 사서(史書)의 표현에 의하면 '초멸정진'(剿滅淨盡'죽여서 깨끗이 없앰)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러시아 측 기록에 따르면 청군(淸軍)이 서몽골을 치면서 남자, 여자, 어린이 구분하지 않고 학살해 아무도 남겨두지 않았다고 한다. 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완강히 저항하는 서몽골에 대한 청의 말살 의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적개심은 서몽골 부족 중 가장 강성했던 '중가르 몽골'의 지도자 '갈단'(喝爾丹)의 유해 처리 방법에서 잘 드러난다. 청의 강희제(康熙帝)는 1690년부터 무려 네 차례나 친정(親征)에 나섰지만 생포하지 못했다. 청의 계속된 공격에 군사와 식량이 바닥난 갈단은 강희제의 네 번째 친정 때인 1697년 도피 중 알타이산맥 숲 속에서 사망했다. 청의 공식 기록은 자살이지만 갈단의 '부당성'과 친정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작이란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갈단의 유해는 그와 대립하고 있던 조카 '체왕 랍단'의 손에 있었는데 강희제는 그에게 압력을 가해 유해를 넘겨받아 말 그대로 '초멸정진'했다. 1689년 베이징에서 갈단의 뼈는 바수어져 허공에 뿌려졌다. 이는 당시 청의 형법에는 없는 완전한 '말소'였다. 그 의미는 갈단은 황제의 은혜를 배반한, 용서할 수 없는 흉적(凶敵)인 만큼 그 몸과 영혼을 인간계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뜻이야 어떻든 전 근대의 야만적 형벌인 것은 분명하다. 그 야만성을 북한에서 다시 본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이 당이나 군 간부를 처형하면서 당사자 가족이 보는 앞에서 소총 대신 총신이 4개인 14.5㎜ 고사총을 사용하며, '반역자는 이 땅에 묻힐 곳도 없다'며 처형 후 화염방사기로 시신의 흔적까지 태워 없애는 방식도 사용한다고 한다. 21세기 판 초멸정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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