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혐오의 윤리학

1975년생. 경북대 의대 졸업. 대구 수성구 정신보건심사위원. 공감과성장 정신건강의원 원장
1975년생. 경북대 의대 졸업. 대구 수성구 정신보건심사위원. 공감과성장 정신건강의원 원장

남녀·보수 대 진보·노사·여야 갈등

한국 사회, 유독 집단 간 혐오 심해

'인간'이란 관점으로 세상 바라봐야

선진국 수준 민주 기반 이룰 수 있어

혐오의 본질은 증오와 시기로 귀결된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비온(Bion)은 증오를 가리켜 '현실을 못 보게 만드는 안대'라고 했다. 상대방과 공감할 수 없게 만든다는 뜻이다. 증오는 분노, 격노 등 인간의 여러 노여움 중 가장 뒤끝이 길다. 하도 오래가는 바람에 성격의 일부로 고착된다. 증오가 제일 싫어하는 건 다름 아닌 관계다. 오직 나만 최고여야 한다. 당연히 친밀감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러니 혐오주의자들에게 우호적 관계를 기대했다가는 뒤통수만 깨질 가능성이 높다.

이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좀처럼 학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엄밀히 말해 증오는 관계 자체보다 그 끝에 무력하게 매달린 대상을 원한다. 혐오, 경멸, 학대, 모멸이란 고문 기구로 끊임없이 상대를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상대 말이다. 타자를 성가셔하면서도 상대가 없으면 또 안 된다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증오라는 녀석은 애초부터 자기애(自己愛)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돋보이게 만드는 액세서리가 없다면 증오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성 혐오 현상, 남녀 사이의 갈등은 단연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 모두는 그들 사이의 다름을 의아해하며 비교하는 습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태어나서 처음 만난 이성인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이 이들의 인생 전체에 미치기 때문이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시기심이라고 한다. 성별이 다른 경우 시기심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프로이트는 남근을 향한 시기심을 여성의 심리 형성에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으나, 요즘은 반대로 남성이 여성의 가슴이나 자궁 그리고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심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고 보편적이며 중요한 이슈로 거론되고 있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글을 톰 티크베어가 필름에 옮긴 영화 를 보면 여성들의 체취를 얻기 위해 무자비하게 살인을 일삼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에겐 체취가 없다. 자신에겐 없지만 남에게는 있는 사람 냄새가 너무 부러운 것이다. 시기와 증오는 내게 없는 게 남에게 있을 때 찾아온다. 시기심은 거의 자동으로 피해 의식으로 이어진다. 투사라는 마음의 착시 현상이 바로 그 중개자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인 결핍이 존재한다. 심리적 혜안과 인격의 성숙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모두가 신선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특정인 혹은 집단을 두고 혐오와 관련된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남녀 전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자면 코넬대학 정치학 교수인 프레드 앨퍼드의 관점을 인용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그가 바라본 한국인의 정서는 다음과 같다. 직장이나 광고에선 끊임없이 '우리' 혹은 '가족'을 강조하지만 정작 행동은 '나'로 귀결된다. 업신여김을 몹시 싫어한다. 존재 그 자체가 부서질 것 같은 모멸감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홀로 살아가는 것 또한 지독히 두려워한다. 늘 누군가를 같이 끼고 있어야 한다. 물리적, 정서적으로 상호 의존성이 보편적으로 만연하다는 뜻이다. 집단에 맞출 필요성을 굳이 느끼지 않는 미국인들과 달리 집단에서 벗어나는 걸 유달리 두려워한다. 문제는 자신의 견해와 믿음이 집단의 보편적인 가치에 위배되면 가차없이 자신의 견해를 억압한다는 점이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를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남녀 간뿐만 아니라 보수 대 진보, 노사, 여야 등 유독 집단 간 혐오가 심하다. 이런 우리가 선진국 수준의 민주적 기반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공통분모이다. 그 관점의 공통분모란 당연히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존엄에 대한 경외심이다. 한 생명을 열 생명의 10분의 1로 보지 않는 태도, 한 생명을 끝없는 하나의 우주로 바라보는 그런 관점 말이다.

김현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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