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4가 철거민 참사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 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텐트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그런 내 삶처럼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전문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 2009)
지금도 왜관의 스타 케미칼 공장 45m 굴뚝 꼭대기엔 한 노동자가 꼬박 1년을 '무허가'로 살고 있다. 회사 사람은 왜 남의 땅에 무허가로 침입하여 불법을 저지르느냐고 손가락질한다. 이제 노동은 자본의 손가락에 따라 헤치고 모이는 소모품이 되어 버렸다. 노동이 세상을 만드는 기본이라는 생각은 이미 낡은 철학이 된 지 오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노동자들이 높은 곳을 오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이 모든 것은 일상화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시는 자기 한계 속에서 힘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어설픈 시를 쓰느니 그 시간에 경제학 책이나 철학 책 한 줄 더 읽고 실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독단적이고 시건방진 생각을 바꿀 생각은 없으나, 그러나 이 시인처럼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시인에게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시와 삶이 분리되지 않는 시들이 있다. 시와 삶의 미분리, 혹은 그 결합의 힘은 죽음에 있다. 삶을 관통하여 죽음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삶을 강력하게 접착하고, 그것이 시의 힘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처음부터 허가받은 곳이 아니었다. 허가를 지탱하는 법도 그 시작을 가지는 역사의 산물이다. 이 세상이 마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이데올로기다. 이 세상은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당연한 진리가 '무허가'가 되어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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