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FTA 대공습…수입 농산물 '물량 폭탄'에 밭 갈아엎는 농업 1번지

고령 성산에서 멜론 농사를 하고 있는 김모(58) 씨는 10년 지은 멜론 농사를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동안은 성산 멜론이 전국 멜론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지만 최근 값싼 외국산 과일들이 넘쳐나면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멜론 재배를 한 지 10년째지만 가격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는 등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면서 "특히 저렴한 외국산 과일들이 국내산 과일들을 대체하는 경향이 점차 확산하면서 지난해는 인근 멜론 농가 3가구가 농사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자유무역협정(FTA) 공습이 본격화하면서 농업 1번지 경상북도가 휘청거리고 있다.

최근 FTA를 등에 업은 값싼 외국산 농산물들이 무차별적으로 국내 시장에 쏟아지면서 경북이 자랑하는 주요 농특산물들의 생산량은 물론, 재배 농가와 면적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였던 농산물이 중국산에 밀리면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귀농귀촌 수요가 있는 경북이 위협받고 있다.

◇고령 성산멜론·성주 참외 등 "농사 접는다"

◆태풍 앞에 선 경북의 과일

전국 멜론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고령 성산멜론 경우, 낙동강변의 비옥한 사질토양과 일조량이 길어 당도가 높고 최고의 맛을 자랑해왔다. 성주참외의 명성에 견줄 정도로 고령 특산품으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이어왔다. 게다가 성산멜론은 벼농사와 이모작을 하기 때문에 연작 피해가 없고, 친환경 재배를 통해 농촌지역 고소득 작물로 각광받아 왔다.

하지만 수입 대체 과일의 영향으로 가격이 내려가면서 재배 농가와 면적이 해마다 줄어드는 실정이다. 성산멜론 가격은 지난해 10㎏짜리가 5만3천원 선에서 거래되던 것이 올해는 5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사를 접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고령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성산멜론은 2013년 184농가'130㏊'3천575t이던 재배농가'재배면적'생산량이 올해 130농가'86.7㏊'2천400t(예상)으로까지 떨어졌다. 2년 전에 비해 54농가가 농사를 그만둔 것이다.

경북도가 최근 집계한 '도내 주요 농산물 생산 현황'에 따르면 자두는 2008년 5만7천277t의 생산량을 기점으로 해마다 줄어 지난해는 4만8천t으로 6년 새 16.2%(9천277t)나 줄었다. 포도 역시 이 기간 동안 15만5천982t에서 14만t으로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었으며, 재배면적도 8천141㏊에서 8천㏊로 감소했다.

전국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며 경북의 대표 작물로 떠오른 참외는 2008년 19만7천416t을 생산했으나, 2014년엔 16만t으로 3만7천416t(18.9%)이나 준 것으로 나타났다. 수박도 같은 기간 12만3천243t에서 9만7천t으로 급감했다.

특용작물인 천궁은 2008년 1천403t을 생산, 전국 생산량의 95%까지 치솟았지만 지난해는 1천t 생산에 그치면서 전국 점유율이 92%로 떨어졌다. 팽이버섯 생산량도 2008년 2만9천34t으로 전국 점유율이 53%였지만, 2014년에는 1만2천t으로 반 토막이 나면서 전국 점유율이 37%로 뚝 떨어졌다.

◇다진 양념 속 고추·양파·마늘은 어쩌나?

◆한'중 FTA는 지금부터다

지난해 농산물 수출대국인 중국과의 FTA가 체결되면서 도내 농민들의 근심이 크게 늘었다. 한'중 FTA는 '밭농업 FTA'로 불리면서 밭작물의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그동안 한'칠레 FTA가 과수 부문, 한'미와 한'EU FTA가 축산 부문에 피해를 줬다면, 한'중 FTA는 채소'특작 부문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정부는 농산물을 초기 민감품목군에 반영해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수립했지만, 일부 가공식품의 관세가 줄어들어 우회적으로 농업 분야가 피해를 보고 있다.

다진 양념(다대기)은 이번 한'중 FTA 협정으로 기존 45% 관세가 44.5%로 줄어들게 된다. 다진 양념에 중국산 고추, 양파, 마늘이 들어간 채로 수입된다면 신선 농산물 양허 제외 조치와는 상관없이 감축된 관세로 국내 반입이 가능하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김치는 기존 20% 관세가 19.8%로 조정된다. 양허 품목에서 제외된 중국산 배추, 무, 고추, 마늘 등이 김치로 가공돼 들어오면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중국산 김치는 1억1천740만달러에 이른다.

인삼류 역시 가공식품으로 수입하면 관세 감축이 가능해진다. 당장은 아니지만 20년에 걸쳐 인삼음료 등 가공식품의 관세가 철폐되기 때문이다.

◇"전통발효식품으로 농산물 품질 높여라"

◆고부가가치로 FTA 파고 넘는다.

경북도는 농업 분야 체질 개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도내 농특산물의 품질 고급화 및 안정성 확보로 경쟁력을 높여 FTA를 기회로 수출'유통의 탄탄한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경북도는 오는 29~31일 문경새재에서 '2015 경북 전통발효식품 산업대전'을 대대적으로 열기로 했다. 전통발효식품의 품질 향상과 경쟁력을 촉진하고, 산지 및 소비자의 경쟁력 있는 우수 전통발효식품을 선발하고 육성하겠다는 것이 이 행사의 취지다.

전통장류, 김치류, 인삼류, 한과류, 다류, 식초류 등 전통발효식품에는 배추, 고추, 콩, 무 등 많은 농산물이 들어간다. 결국 전통발효식품 산업을 키우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내 농특산물의 위기도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북도는 '전통발효식품 산업화지원센터'를 국비 사업(2017~2019년'100억원)으로 요청하기 위해 지난달 유치타당성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경북도 최영숙 FTA 농식품유통대책단장은 "EU'미국'중국 등 53개국과의 FTA 타결로 우리 농어업이 크게 약화할 수 있다고 판단, 지난 2008년 전국 최초로 가동한 경북 농어업 FTA 대책특위를 중심으로 10년간(2015~2024) 대책을 만들었다"면서 "전통발효식품 산업 육성도 이 일환이며, 앞으로 선진 농업국과 경쟁할 수 있는 경북형 농어업 체제 구축을 통해 품질의 고급화, 안정성 등으로 차별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김승규 교수(농업경제학)는 "농업인들이 FTA라는 환경에 맞춰 이익 창출을 위해 생산량을 조절하고 작목 간 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면서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산품질 향상과 가격 경쟁력 있는 품목 개발 등으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김천 신현일 기자 hyunil@msnet.co.kr

고령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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