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크랑 산군 '앙빠리스 평원'

호숫가 에델바이스·양들이 풀 뜯는 언덕…상상하던 알프스 그대로

#프랑스 최대 국립공원

#7~9월 중순 최고 좋아

#영어 의사소통도 무난

에크랑(Ecrins) 산군은 유럽대륙의 동쪽 슬로베니아에서부터 지중해까지 약 1천200㎞ 길이로 뻗어 있는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몽블랑 산군보다 더 광대한 3,000~4,000m 봉우리들의 집합체인 에크랑 산군은 최고봉인 에크랑(4,102m) 외에도 라 메이즈, 오랑, 몽 펠부 등 3,000m가 넘는 빼어난 봉우리들이 수십 개 모여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넓고 높은 최고의 국립공원으로 풍광이 빼어나고 야생성이 잘 보존되어 있어 알프스를 깊이 호흡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이 산군 북측 면에 접한 앙빠리스 평원(Plateau d'Emparis)에서 지켜보는 에크랑 산군의 전경은 알프스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위험하거나 힘들지 않은 드넓은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양들 너머 펼쳐진 만년설산의 목가적 풍경이 좋다.

프랑스 동남부의 유서 깊은 도시 그르노블에서 1시간 30분 차량으로 이동하면 닿는 라 그라브(la Grave· 1,474m)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러 샤즐레(le Chazelet·1,786m)까지 차량을 이용할 수 있지만 마을 외곽을 돌아 걸어가면 색다른 재미가 있다.

도중에 떼라스 마을도 지나는데, 알프스 산골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집집마다 창가에 제라늄 등 화분으로 치장을 해두기도 하고 해시계를 그려 넣은 벽면도 운치가 있다. 화단이나 텃밭을 가꾸는 할아버지들도 눈에 띈다.

마을 외곽에는 오래된 작은 예배당도 있는데, 샤즐레 마을에선 십자가 너머로 라 메이즈(la Meije'3,982m)가 우뚝 솟아 있다. 숱한 알피니스트들의 등반대상지인 이 봉우리는 가파른 바위 침봉들이 뭉쳐 있어 제법 위압적이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된 '알피니스트의 마음'의 저자 장 코스트가 1926년에 이 봉우리 북벽을 오르고 조난사한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이 젊은 산악인에게 더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그가 20대 중반에 단명했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 또한 20대에 왜 산에 오를까, 왜 사느냐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으려 했었다.

러 샤즐레 마을 중앙에 우물이 있는데, 앙빠리스 평원을 지나기까지 식수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다. 시원한 샘물을 물통 가득 담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나무라곤 없는 풀밭 언덕을 반 시간 이상 오른다. 등 뒤로는 줄곧 라 메이즈가 솟아 있다.

큰 풀밭 언덕의 허리길을 가로질러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슈세 고개로 곧장 오르지 말고 느와르 호수 쪽으로 간다. 전망이 트인 알파인 평원에 제법 큰 호수가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샤즐레 마을에서 한 시간 조금 더 걸려 느와르 호수에 이른다. 호수 주변 풀밭에서 에델바이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필자가 알프스에서 본 곳 중 에델바이스가 가장 많은 장소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이 호수 주변에서 캠핑을 하며 에크랑 산군의 일몰 풍경이 호수에 담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알프스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이제껏 필자는 에크랑 산군을 세 번 찾았는데, 8년 전 여름에는 이상하게도 2,000m 지대까지 눈이 내렸다. 한여름 눈에 발이 묶인 덕분에 비세 고개에서 하루, 느와르 호수에서 하루를 묵느라 앙빠리스 평원에서 이틀 밤을 지낸 적이 있다.

느와르 호수에서 슈세 고개에 이르는 길은 평탄하고, 이후 나지에 고개까지 길도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다. 앙빠리스 평원의 시원함을 가슴 가득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도중에 비세 고개도 지나는데, 큰 십자가가 이정표 구실을 해준다. 간혹 몇몇 트레커들이 당나귀에 짐을 싣고 지나기도 한다.

비세 고개에서 멀지 않은 북쪽에 또르(Tort) 산장(2,240m)이 있어 잠시 들러 점심을 먹어도 좋다. 알프스의 산장들은 그들만의 특색 있는 요리를 준비하기에 산장에서 알프스 산골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에 즐거움을 더한다.

나지에 고개 넘어서는 줄곧 내리막이다. 험하지 않은 흙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져 있다.

고갯마루에서 한 시간 정도면 베스 앙 와장(Besse en Oisans·1,550m)에 도착한다. 오래된 돌집에 나무로 만든 예쁜 꽃 화분들이 잘 장식되어 있는 이곳은 작은 관광정보센터뿐 아니라 박물관과 빵집, 식료품점, 식당과 여행자 숙소 등이 잘 갖춰져 있어 하룻밤 묵어가기 좋은 매력적인 산간마을이다. 돌집으로 연이어진 골목길이 알프스의 운치를 더해 만족스럽게 하루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

알프스 전문 산악인 vallot@naver.com

★Tip: 그르노블 공항에서 버스 2번 환승해 1시간 30분 거리

에크랑 산군에서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는 그르노블이 가장 편리한 교통도시인데, 그르노블 공항에서 버스로 30분이면 기차역 바로 옆 버스터미널에 닿을 수 있다. 열차를 이용해 제네바나 샤모니, 파리 등에서 그르노블까지 가면 되고, 그르노블에서 에크랑 산군의 관문인 부르드와장(Bourg-d'Oisans)까지 버스로 한 시간 걸린다. 여름 성수기에도 두 시간에 한 대 정도 버스가 있기에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부르드와장에서 앙빠리스 평원의 산행 출발지인 라 그라브까지는 30분 거리다. 각 마을 및 산장은 쾌적한 숙식을 제공한다.

한편 에크랑 산군을 한 바퀴 도는 180㎞ 길이의 일주 코스도 있는데, 일주일 이상 2,000m 이상 고개들을 넘나들면서 프랑스 최고의 국립공원을 트레킹할 수 있다. 의사소통은 영어만으로도 불편이 없으며 일부 산장에서는 카드 사용도 가능하지만, 유로화를 지니고 다니는 게 편리하다. 부르드와장이나 라 그라브 등 큰 마을에는 현금지급기도 있다. 산행은 7월부터 9월 중순까지가 좋다. 에크랑 산군은 국립공원이지만 오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 캠핑을 허락한다거나 몇몇 계곡에서 땔감을 주워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등 알프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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