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의 길거리에는 아주 맛있는 숯불구이집이 있습니다. 해질 무렵이 되면 한 무리 아이들이 나와서 영업 준비를 합니다. 어찌나 재미나게 일을 하는지 보기에도 즐겁습니다. 테이블을 펴고 의자를 놓는 아이, 화덕에 불을 붙이고 부채질하는 아이, 고기를 준비하여 석쇠에 구울 준비를 하는 아이, 술과 음료수 상자를 들어 나르는 아이,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불과 몇 분만에 영업 준비를 끝낸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고기를 굽기 시작합니다.
고기 향이 거리에 퍼지기 시작하면 손님들이 들이닥치고 영업체계가 가동됩니다. 모든 일이 분업화되어 있습니다. 진두지휘를 하는 총감독이 손님을 향해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면 그것을 신호로 아이들이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여자애가 달려나와 주문을 받으면 다른 아이가 손 씻을 물과 얼음이 담긴 컵을 가져와 테이블을 세팅합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음료와 술을 가져오고, 구워진 고기를 가져오고, 요리를 가져오는 역할로 나누어집니다. 요리는 돼지숯불구이와 조개, 달팽이 볶음이 있습니다. 한 접시에 6천리알(1천500원)이고, 밥은 2천리알(500원), 음료는 4천리알(1천원)입니다. 영업은 준비한 고기가 다 팔릴 때까지, 보통 하루 4시간 정도 이어집니다.
영업장은 매일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요리의 맛이 일품이지만, 신속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팀워크도 고객 유치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손님을 기다리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스럽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총감독이 20대 중반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10대 중'후반입니다. 밤에 잠깐 일을 하면 낮에 학교에 다닐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있고,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어 방치된 아이도 있는데 총감독이 대부 역할을 합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모아 주경야독을 하는 것입니다.
총감독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말합니다. 지금 캄보디아에는 일할 것도 일할 의욕도 없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인력거를 끄는 게 전부입니다.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습니다. 체념과 가난 외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킬링필드의 아픔 때문입니다. 프놈펜에 있는 또울슬랭 대량학살 박물관을 가면 폴 포트 정부 시기의 학살을 담은 영상물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정치범을 수용했던 S-21감옥의 간수로 근무하던 남자의 인터뷰 장면이 나옵니다. 남자는 200만 명을 도살한 폴 포트 정권시절 그 감옥의 간수를 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는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당시 그는 나이가 18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살기 위해서 시킨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때 이후 늘 죄인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프놈펜의 외곽에 가면 폴 포트 정부가 살인극을 벌인 킬링필드가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높은 탑이 있는데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의 해골로 채워져 있습니다. 탑 뒤편으로 가면 매장된 시신들을 파낸 구덩이들이 있고 가운데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작고 나지막한 나무에는 형형색색의 리본이 가득 매달려 있어 이채롭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름이 새겨진 팔찌나 장신구들이 많습니다. 여행객들이 자신이 차고 있던 장신구를 죽은 아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걸어둔 것입니다. "썩은 사과는 상자째로 버려야 한다"면서 정치인들의 가족들을 몰살시켰고, 의사나 교사도 재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처형하였습니다. 안경을 착용한다거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이유로도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무기력한 것입니다. 아직도 살아있는 현재의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가 등장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식민지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유물입니다. 종전 70주년을 맞았다고 입에 발린 사과와 겉치레 인사말로 범죄를 역사 속에 묻으려는 무리들도 한 번쯤 캄보디아의 아픔을 느꼈으면 합니다.
이정태(경북대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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