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촌, 서울 그리고 촌 오아시스

조선 대학자 정약용은 유배 중 아들에게 편지로 한양 주변에 머물 것을 신신당부했다. 모든 것이 수도 한양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馬)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도 유행했다. 나라 표준말 기준도 '중류사회의 서울말'이 됐다. 조선조 이후 서울의 역할과 중요성은 세월이 흐를수록 커졌다. 전국 어디서건 서울 갈 때 '상경(上京)한다'고 했다. 서울 사람에게 서울 밖은 통상 '촌'(村)이거나 '시골'이다. 필자도 서울 생활 때 "대구에서 왔어요"하면 "아, '촌'에서 오셨군요"라는 소리를 가끔 듣곤 했다.

모든 것이 서울 위주다. 모든 것이 서울로 몰렸다. 사람만 보자. 지금은 국민 다섯 사람 중 한 명은 서울사람이다.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수도권으로 불리는 서울'경기'인천에 둥지를 틀고 산다. 2014년 말 현재 주민등록 기준으로 전체 인구는 5천132만7천916명이다. 서울(1천10만3천233명)을 비롯한 경기도, 인천을 합친 수도권 세 곳(2천536만3천671명)이 나머지 인구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그런데 이런 인구 집중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젊은이가 일자리와 배우자, 살 곳을 찾아 서울과 수도권에 몰리고 있어서다.

왜 이렇게 몰릴까? 계명대 김영철 교수는 지난해 '문화분권'이란 책에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왜 한국의 청년은 지역을 떠나 서울로 집중될까? 그곳에 공짜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정보가 서울에 있다. 공짜다. 지역에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엄청난 정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흘러다니며, 심지어 서울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도 넘쳐흐른다. 온갖 형태의 SOC(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서울에 그동안 집중됐는데 그동안 그것을 위해 돈 한 푼 낸 적이 없어도 당장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금전적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을 훨씬 초과하는 공유적인 것으로부터 받는 비금전적인 수익이 청년 노마드(유목민)를 서울로 유인하고 있다."

따라서 떠나는 젊은이로 전국이 속앓이다. 대구도 2010년 251만1천676명에서 2014년 249만3천264명으로 줄었다. 대구 청년 역시 유목민처럼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탈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지난 16일 대구시청년위원회가 열렸다. 오는 22일 대구청년포럼도 열린다. 떠나는 젊은이를 머물게 하고 젊은이가 찾는 대구를 만들기 위한 묘안 마련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젊은이를 머물게 하고 찾게 할 수 있을까? 계명대 김영철 교수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대구 청년은 지역문제에 대해 낙관하며 남아서 '충성'하지도 않고, 목소리를 내고 문제해결을 위해 '항의'도 않고 대신 지역을 '이탈'하는 선택을 한다고 분석했다. 즉 청년을 머물게 하려면 '이탈' 아닌 '항의'와 '충성'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젊은이가 '항의'의 선택을 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변화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오아시스 이야기도 했다. "사막의 오아시스에 대상(隊商)들이 찾는 것은 오아시스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물과 그늘 그리고 사람의 환대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공짜로 오아시스에 힘겹게 도달한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짜로 제공되는 것이 많은 오아시스에 대상은 찾아든다."

'촌' 대구는 어느 곳보다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 사회적으로 한쪽으로 너무 편향된 탓이다. 그러기에 젊은이가 '항의'와 '충성'보다 '이탈'을 선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젊은이는 신체의 피와 같아 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청년이 제 목소리를 내는 여건을 만들어주자. 항의든 불만이든 무엇이든. 서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이 누릴 공짜도 제공하자. 청년에게 고향 대구를 강요하지 말자. 언제든 떠나고 돌아올 수 있게 하자. 돌아올 때 한 사람 더 데리고 오면 더욱 좋고. '촌' 대구를 '오아시스'로 만들 고민도 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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