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손가락

1930년대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는 당시로서도 화제작이었다. 방탕한 사생활 때문에 생식기능을 상실한 노총각이 늦장가를 들어 얻은 아들을 자신의 핏줄로 강변하는 언행이 차마 눈물겹다. 오죽하면 열 손가락 다 제쳐 둔 채 의사인 친구 앞에서 양말까지 벗어가며 가운뎃발가락 긴 것이 닮았다고 했을까.

사실상 손가락은 발가락에 비해 그 모양새나 쓰임새만큼이나 명칭도 다양하다. 첫째 엄지손가락은 으뜸이라는 뜻에서 무지(拇指)나 대지(大指)로 부른다. 둘째 집게손가락은 검지나 식지(食指)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음식 맛을 볼 때 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셋째 중지(中指)는 가장 길고 우뚝해서 장지(長'將指)인 모양이다. 넷째 손가락은 별다른 역할이나 이름도 없어서 무명지(無名指)라고 했다. 반지를 왼손 무명지에 끼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 손가락이 심장과 경혈이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에 약을 저을 때만큼은 사용한 까닭에 약지(藥指)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다섯째 새끼손가락은 가장 작고 끝에 있으니 소지(小指)'계지(季指)로 불렀을 것이다. 손가락의 상대적인 길이를 두고 이런저런 속설도 많았는데, 최근에는 이와 관련한 성적 취향과 운동 능력 또는 재력 등을 판단하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나와 흥미를 끌었다.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서는 무명지가 긴 사람은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아 자신감과 공격적인 특징을 지닌다는 논문을 게재한 적도 있다.

피아노와 기타를 칠 때도 그랬지만, 요즈음 컴퓨터 키보드를 다룰 때도 다섯 손가락은 여전히 유용하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했나 보다. 손가락은 그 활용성도 중요하지만 발가락에 비해 항상 드러나 있기 때문에 미관상으로도 인체의 키워드임이 틀림없다.

사고 등으로 손가락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상실감은 그래서 더 클 수밖에 없다. 절단된 손가락을 다시 접합하거나 발가락을 옮겨와 손가락으로 재건하는 미세재건술은 대구가 전국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독일에서도 의술을 배우러 올 정도이다. 최근에는 손가락이 절단되었을 때 재접합 수술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뛰어넘는 연구결과까지 발표해 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의료관광도시를 추구하는 대구의 이미지에 부응하는 낭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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