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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엄격한 스승, 좋은 동료 그리고 친구

이 철 우
이 철 우

스승의 날이 있는 5월 셋째 주간은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주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음악사의 대표적인 스승과 제자들의 삶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쇤베르크와 그의 두 제자의 관계 및 업적을 소개하고자 한다.

쇤베르크는 187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성장한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3년 나치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고, 1941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이후 보스턴을 거쳐 로스앤젤레스에서 교수로 생활하며 작품 및 후진 양성에 기여했고, 1951년 세상을 떠난 20세기 대표적 작곡가이다. 초기에는 장조와 단조라는 조성음악 탈피를 추구하며 바그너적 반음계주의의 전통을 잇는 작곡가였으나, 점차 전통적인 조성을 부정하기 시작하여 무조(A-Tonality) 음악을 추구하다가, 결국 12음기법이라는 작곡기법을 확립하였다. 말년에는 다시 조성으로의 복귀를 시도한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음악적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외부로부터 얻은 예술적 감흥을 드러내는 인상주의 표현방식을 피하여, 작가의 미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내면세계의 섬세한 정신을 나타내는 표현주의를 추구하였다. 그는 수많은 중요한 작품들을 쓴 것 이외에도 후학들을 위해 '작곡기법'과 '화성법' 등의 다양한 이론서적들을 집필하였고, 여러 편곡 작품들도 남겼다.

그에게는 베베른(1883~1945)과 베르크(1885~1935)라는 두 제자가 있었다. 쇤베르크에게 그들은 20세기 초 서유럽 현대음악을 발전시킨 빈 악파를 함께 이끌며 음악적 이상을 공유한 동료였다.

원래 쇤베르크는 두 제자의 엄격한 작곡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장성한 후의 두 제자와 쇤베르크는 무조음악과 12음기법의 발전을 위시하여 표현주의 작곡가로서 20세기 현대음악의 미래를 위한 이상을 공유하며 활동한 동료 사이였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나치로부터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등 삶을 같이 나눈 친구 사이였다.

베르크는 벌레에 물려 야기된 패혈증으로 인해 1935년 50세의 나이로 스승인 쇤베르크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베르크가 죽자 음악 활동이 크게 위축된 베베른도 1945년 2월 열차 폭격으로 외아들을 잃고, 전쟁이 끝난 1945년 9월 빈 근처까지 진군해온 러시아군을 피해 부인과 함께 잘츠부르크 근교로 피란하였다. 그러나 현관에서 담배를 피우다 미군 헌병의 총기 오발로 비극적인 생애의 막을 내렸다. 노년의 쇤베르크는 두 제자의 안타까운 소식을 미국에서 접했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1년 삶을 마감하였다.

전쟁과 질병이 그들의 삶을 분리시키긴 했지만, 사제 관계에서 동료로 그리고 친구로 발전하며 같은 이상을 품고 한 생애를 살았던 그들의 아름다운 관계가, 스승의 날을 지나며 필자의 삶에 또 하나의 숙제로 주어진다.

(작곡가·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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