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청이 옮겨갈 신도시의 이름을 두고 말이 많다. 국민공모를 거친 후보명을 추리고 추려서 10개로 정리하고 이를 다시 5개로, 또 3개로 압축한 것이 퇴계, 예안, 동천 등이다.
'퇴계'부터 보자. 퇴계는 이황의 호다. 세종시처럼 위인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짓자는 취지에서다. 공모에서도 1위를 했다. 도시 마케팅을 위해서라면 국제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퇴계라는 도시 이름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특정 성씨와 연관이 있어 합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흘려들어서는 곤란하다.
예안은 예천과 안동의 첫글자를 땄고, 동천은 안동과 예천의 뒷글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두 이름 다 너무 가볍다. 무성의하기까지 하다. 두 지역을 아우르는 이름이라고 꼭 지역명에서 두 글자를 따올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필자 개인적으로는 동두천이 연상되는 동천보다는 예안이 더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안동은 예천이 안동의 품 안에 들어오기를 바란다. 행정통합을 먼저 추진하자는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예천은 안동이 흡수통합하려 한다는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대신 안동의 통 큰 양보를 요구한다. 예안이라는 이름을 쓰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안동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처럼 안동과 예천의 자존심 싸움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몇몇 뜻있는 사람들은 안동과 예천의 반목이 순항하던 도청 이전 사업에 옥의 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걱정을 한다.
잡음이 이어지자 결국 이 문제는 제동이 걸렸다. 경북도가 신도시 명칭 당선작 발표를 뒤로 미뤘다. 당선작 없음을 이유로 들었지만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북도는 이 문제를 계속 논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른 시일 내에 작명이 완결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신도청 청사는 건물만 지어놓았지 사람과 일은 아직 옮겨가지 못했다. 본진의 이주는 올 연말을 넘길지 모른다. 하드웨어는 뚝딱뚝딱 만들면 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아직이다.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름짓기도 소프트웨어에 속한다.
멀리 내다보면 이름은 지어야겠지만 지금은 시간을 버는 것도 방법이다. 행정구역 통합도, 신도시 이름짓기도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10년 넘게 손을 맞잡고 도청 유치의 한 길을 걸어온 안동과 예천이지 않은가? 이름을 안 지었다고 이전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니 좀 더 기다려보자. 그냥 기다릴 게 아니라 10년 뒤, 100년 뒤의 미래를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도청 이전지를 결정한 일에 비하면 이름 짓기는 무게감에서 '새 발의 피'다. 10개 지역이나 나섰던 도청 이전 희망지 가운데 한 곳을 선정한 결단이라면 못 할 것도 없다. 낙선할지도 모른다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김관용 지사가 결단을 내리던 2008년 6월의 기억이 생생하다. 김 지사의 그때 강단이라면 이름짓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걱정되는 건 김 지사나 도청에서 김 지사의 임기 내에 작명까지 마무리하려는 과잉 의욕을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정지작업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다가 '도청 이전'이라는 치적에 흠집이라도 남긴다면 큰일이다.
지금부터 신도시 이름을 짓는 일이나 행정구역 통합 이야기는 가급적 자제했으면 한다. 서둘다가 그르치느니 의도적으로라도 삼가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물리적인 도청 이전의 원만한 마무리보다 더 급한 일은 없다. 시한을 정하지도 말자. 이름을 안 지어도 아이는 달이 차면 세상에 나오기 마련이다.
(필자는 안동 사람이다. 안동서 나서 자랐고 학창시절은 대구에서 보냈다. 안동 중에서도 도산서원이 있는 도산면이 고향이다. 퇴계 이황의 후손이다. 이렇게 신상을 밝히는 것은 이글에 대해 오해가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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