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장준하 지음/돌베개 펴냄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일본군 부대를 탈출, 6천 리를 걸어 충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대장정을 그린 수기다. 지은이 장준하는 1944년 7월 중국 쉬저우에 주둔하고 있던 쓰카다 부대를 탈출한 뒤 린촨, 난양, 라오허커우, 파촉령을 넘어 1945년 1월 31일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착했다.
장준하가 1944년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던 날부터, 1945년 11월 임시정부의 환국 직후까지 겪고 보았던 이야기를 기록했다. 일본군 부대탈출 과정과 그들을(함께 탈출한 김영록, 윤경빈, 홍석훈) 가로막은 운하, 갈증과 배고픔, 중국 농민의 도움, 중국 중앙군 소속의 유격대에 발견돼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탈출 후 안후이성 린촨에 있는 한국광복군에서 훈련받던 시절 장준하는 심리적 갈등을 겪기도 했다.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길에 떨어진 돈조차 줍지 않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부대원들이 배고픔에 시달릴 때 취사 책임을 맡게 됐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중국 농민들의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캐오는 '야간침투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정직하게 살고 싶었지만 배곯는 동지들을 보면서 '책임완수'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광복군 훈련을 마치고 중국군 육군 중위로 임명된 뒤 일행은 다시 충칭 임시정부를 향해 길을 떠난다. 민간인들을 포함해 53명이 1944년 11월 30일 린촨을 떠나 3개월 동안 충칭 행군에 올랐던 것이다. 도중에 일본군 관할 지역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하루 100리씩 걸으며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토비(마적단) 소굴에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몸에는 온통 옴이 올라 있었고, 양말과 신발도 없어 짚신을 신고 행군을 계속했다. 일본군 전투기의 공습을 받았고, 제비도 넘지 못할 만큼 험준하다는 파촉령을 오직 서로의 체온과 굳은 의지에 의존해 넘기도 했다.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충칭의 임시정부에 도착한 장준하 일행은 1945년 1월 31일 광복군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의 정식 사열을 받은 후 임시정부 각료들을 처음 대면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수천 리 길을 달려온 일행은 드디어 몸바칠 곳을 찾았다는 뜨거운 감격으로 통곡의 바다를 이루었다. 그러나 감격의 시간은 짧았다. 임시정부 내의 무수한 파벌싸움에 넌더리가 나고 만 것이었다.
당시 임시정부는 한 명이라도 더 자파에 끌어들이려는 공작이 난무했다. 임시정부 각료는 물론이고 충칭 시내 교포들까지 모두 참가하는 주회(週會)에서 장준하는 폭탄 발언을 쏟아냈다.
"가능하다면 나는 이곳을 떠나 다시 일본군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일군 항공대에 들어가 충칭 폭격을 자원, 이 임정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습니다. 왜냐구요? 선생님들은 왜놈들에게 받은 서러움을 다 잊으셨단 말씀입니까? 그 설욕의 뜻이 아직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네 당, 내 당하고 겨누고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분명히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조국을 위한 죽음의 길을 선택하러 온 것이지, 결코 여러분들의 이용물이 되고자 해서 이를 악물고 헤매어 온 것은 아닌 것을 말합니다."
이후 장준하는 미국 전략첩보부대에 소속돼 특수훈련을 받았으나 1945년 8월 해방을 맞이했다. 조국 땅에 전투부대로 상륙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조국 해방이라는 기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장준하는 1945년 11월 임시정부와 함께 귀국해 김구 주석의 비서로 지냈으며, 여러 인사와 만남을 거듭하면서 우려와 실망을 맛보게 된다. 주지육림에서 놀아나는 환영회가 이어졌고, 그 와중에 우리 민족의 운명은 이미 강대국의 손에 요리되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그의 대장정도 막을 내린다.
장준하 선생의 항일수기 '돌베개'는 1971년 사상계에서 출간된 이래, 1976년 일본에서 '석침'(石枕)이라는 제목으로, 1978년에는 화다출판사에서, 1985년에는 '장준하문집'으로, 1987년에는 청한문화사에서 '돌베개: 청년시대의 항일투쟁기'라는 제목으로, 1992년부터는 세계사에서 간행되었다. 2006년에는 요약본, 2007년에는 양장본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돌베개 출판사는 1979년 장준하 선생의 책에서 출판사명을 따와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장준하 선생 서거 40주기에 즈음해 이 책 '돌베개'를 출간했다.
'돌베개'는 창세기 28장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장준하가 일본군을 탈출할 경우 아내에게 남기기로 한 암호였다. 장준하는 편지 말미에 "앞으로 베어야 할 야곱의 '돌베개'는 나를 더욱 유쾌하게 해줄 것이다"라는 다짐을 써서 보낸 후 탈출했다. 444쪽, 1만6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