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힐링토크] 부산의 또 다른 명물, 클래식 기타리스트 고충진 씨

"기타는 외로움도 달콤하게 만드은 마법의 악기…위로 나누고 싶어"

고충진 씨가 부산의 한 한의원 원장으로부터 기증받은 명기
고충진 씨가 부산의 한 한의원 원장으로부터 기증받은 명기 '마티아스 담만'. 지금 주문하면 10년 뒤에나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세계적인 명기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고충진(49'부산 동래구 명륜동) 씨. 그는 독일 명문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출신이라는 점,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몇 번의 기타 독주회를 가졌다는 점, 그리고 '바람이 가르쳐준 노래'라는 다소 시적인 영감을 주는 앨범을 만들었다는 점 외에는 이렇다 할 이력이 없다.

그러나 그의 앨범을 듣거나 그의 연주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프로필을 뒤지게 만든다. 그만큼 그의 기타는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마음을 녹이는 치유의 힘을 가졌다.

기타광으로 알려진 그를 만나기 위해 부산 동래구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찾았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한 그에게 악수부터 청했다.

-손이 딱딱할 줄 알았는데 부드럽다.

▶처음 기타를 시작할 때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많았다. 기타를 만진 지 35년도 더 지났다. 힘을 빼고부터는 손이 부드러워졌다. 심지어 손이 예쁘다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웃음)

-기타와의 인연은.

▶학창시절 나는 여드름이 많았고 말도 더듬고 용모도 아름답지 못했다. 모두들 나를 멀리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우연히 기타를 알게 됐고, 기타를 만지면서 외롭지 않았다. 기타 칠 때는 여학생들이 바라봤지만 기타만 놓으면 원상태로 돌아갔다. 하하하.

-기타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기타는 사람의 신체와 접촉이 가장 많은 악기다. 줄을 손으로 직접 퉁기고 소리가 심장에 바로 전달되는 멋진 악기다. 심장의 박동을 느끼면서 연주하다 보면 스스로 빠져들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기타만 있으면 무인도에서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기타는 그만큼 중독성이 있다. 기타 연주는 아직도 공연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기타만의 애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다른 악기와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멋지다.

-기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를 표현하는 도구다. 표현하는 방법에는 책을 읽듯 그대로 읽는 것과 이야기하듯 말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나에게 기타는 말하는 것과 같다. 악보를 보고 단순히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보를 보면서 내 이야기를 전달하려 한다. 연주가 끝나면 긴 노래를 한 것 같다. 기타를 꺼내고 다시 넣은 사실마저 잊어버릴 정도다. 기타가 아예 없는 듯하다. 그냥 아름다운 노래를 한 곡 부른 느낌이다.

-당신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기타와 하나가 된 그런 느낌 때문인가.

▶여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추어는 악보대로 연주하고 곡을 쉼 없이 몰아간다. 그러나 기타를 오래 연주하다 보면 여백과 쉼을 아주 적절한 곳에 둘 줄 안다. 악보를 읽기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에 마음에 더 다가가는 것 같다.

-악보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인가.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교수로부터 배운 것 중의 하나가 악보를 열심히 읽는 것이었다. 작곡가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작곡가가 되어 연주를 하도록 배웠다. 머릿속에 음악을 그리며 악보를 보는 것이다.

-기타는 아주 흔해서 유학을 간다는 게 조금 생소하다.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엔 클래식 기타 전공이 있는 대학이 없었다. 지금은 서울대를 비롯해 많은 대학에 기타전공이 있고 유학을 한 기타리스트들이 아주 많다.

-독일 유학을 7년간 했다.

▶1986년 그 당시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클래식 기타 전공과정이 있었던 대학에 들어갔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졸업을 하지 못했다. 군에 갔다 기타 학원을 열었으나 배우고 싶은 열망을 접을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내와 아들을 남겨둔 채 30세에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1996년이다. 독일에서 최초의 음악대학이며 600년 된 라이프치히 음악대학이었다. 그곳에서 유럽과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인 까를로 마키오네 교수로부터 6년간 사사받았다.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제자였다.

-합격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한 명의 학생을 뽑는데 유럽 등지에서 7명의 기타리스트가 지원했다. 용케 내가 뽑혔다. 바로크 음악과 바흐를 전공했다. 돈이 없어 고생도 많았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 등을 배웠다. 독일의 알고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루마니아 박카우 필하모니와 협연도 했다.

-2003년 한국에 왔다.

▶유럽에서 기타를 연주할 무대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해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이후 고향인 부산에서 처음으로 독주회를 열었고 연이어 2005, 2009년 독주회를 가졌다. 기타 독주회는 말만큼 쉽지 않다. 기타곡이 그만큼 많지 않고 대부분 편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앞으로 또 한 번의 독주회를 하는 것이 목표다.

-2009년 처음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음반 타이틀이 '바람이 가르쳐준 노래'다. 유니버설뮤직에서 만든 것이다.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편안함과 따스함을 선사하고 싶었다. 화려한 기교를 빼고 차분하고 편한 곡들을 골랐다. 프란시스코 타레가(스페인 음악가 겸 기타리스트) 타계 100주년을 맞아 그의 곡 3곡을 넣고 '칠갑산' '찔레꽃' '봉숭아' 등과 브라질 기타리스트 질레르만도 헤이스의 'If I ask her'에서부터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등 16곡을 실었다.

-이 앨범 중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주제곡을 편곡한 곡이 인기를 얻었다.

▶영화 속의 주제곡은 피아노로 연주한다. 피아노보다는 고충진의 기타곡으로 더 많이 연주된다고 들었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저절로 편곡이 됐다. 기타와 잘 어울리는 곡이다.

-공연 때면 '로망스'를 대부분 연주한다. 질리지 않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기타곡이다. 공연을 '로망스'(스페인 민요)로 시작하는 날이면 대부분 성공적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관객들의 몰입도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로망스는 도입부에 중독성이 있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연주에 빠져들게 된다.

-독일에서 바흐를 전공했다. 그런데 연주곡이 너무 대중적인 곡들이다.

▶클래식 기타곡을 생소하게 여기는 관객이 많기 때문이다. 클래식 기타의 매력을 알리고 관객의 감성을 충족하기 위해 대중적인 곡을 연주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열게 될 독주회에는 클래식 곡을 많이 넣을 예정이다.

-일 년에 연주회는 몇 번 정도 갖나.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무대에 선다. 주로 하모니카, 바이올린, 플루트 등과 함께하고 공연 중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기타 연주가 들어가기도 한다. 일 년에 100번 정도 연주한다. 부산에서 주로 하지만 불러주면 어디든 마다치 않고 간다.

-공연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혹시 수입 때문인가.

▶사실 얼마를 주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주는 대로 받는다.(웃음) 어려운 시설이나 병원, 작은 곳에서 무료공연도 많이 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왜관의 아름다운 가실성당에서 플루트와 함께한 연주회를 가졌다. 기타를 알리고 기타를 찾는 이들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

-무대를 조금은 가려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래도 관객이 있고 기타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으면 가고 싶다. '내가 누군데' '내가 어떻게 그런 무대에?'라고 생각지 않는다. 내 공연을 듣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부산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런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부산이 좋다. 서울서 깃대를 꽂는 것도 좋지만 작은 도시를 찾아다니며 그곳에 클래식 기타를 알리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크고 멋진 곳에서 연주하면 좋겠지만 작은 곳 따뜻함이 피어오르는 곳이 기타와 더 어울릴 수 있다.

-세계적인 기타 '마티아스 담만'(Matthias Dammann)을 가지고 있다.

▶'담만'은 지금 주문하면 10년 뒤에나 손에 넣을 수 있는 세계적인 명기다. 돈(4천만원)이 있다고 바로 살 수 있는 악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담만을 가지는 영광을 누렸다. 늘 갖고 싶었는데 2007년 부산의 한 한의원 원장이 선물해주었다. 내가 열심히 연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주변의 도움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담만의 장점은.

▶클래식 기타가 가진 약점은 소리가 작다는 것이다. 담만은 소리가 크다. 그런데도 클래식 기타의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아주 잘 전달하고 있다. 마이크가 없어도 공연할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멋지다.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의 나'가 만들어졌다.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나를 불러주는 곳이면 아무리 작은 공연이라도 간다. 부산시민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취미가 많다.

▶오디오에 취미가 있다. 독일제 빈티지 오디오를 들여와 소리를 찾는 재미를 즐긴다. 오디오를 접하면서 기타곡을 위한 영감을 얻기도 한다. 빈티지 오디오를 들어보면 오디오는 갈수록 퇴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50년 된 스피커와 앰프에서의 소리가 더 현장감이 있다. 물론 비싸지 않은 오디오들이다. 커피에도 관심이 많다.

-오토바이도 할리 데이비드슨이다.

▶차가 없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까 주변에서 준 것이다. 신호를 기다릴 때 '부르릉' 하는 '할리'의 소리는 심장을 떨리게 한다. 마치 기타를 연주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음반을 내고 싶은데 곡 선정을 못하고 있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전국 투어도 하고 싶다. 공부를 더 하고 싶기도 하다. 최근에는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그것이 연주회가 됐든 책이 됐든 어떤 모양으로든 나타날 듯하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강습현 focus1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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