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칼럼] 평등주의와 국가경쟁력

1962년 경북 경산생. 금오공고
1962년 경북 경산생. 금오공고'경북대졸. 공인회계사. 전 대구시 감사관

사농공상주의'부모의 희생'평등주의

고도성장 이후 정체현상의 주범 몰려

새로운 정서와 가치관의 정립 없이는

국민소득 3만달러, 4만달러는 요원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대 정체현상, 저출산'고령화, 취업난 등이 우려의 주범이다. 여기에다 정치권에 의한 무분별한 복지정책의 남발은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우려에 대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안 마련을 위한 국민적 합의나 정치적 합의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우려되는 현상에 대한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필자는 우리의 정서와 가치관으로부터 그 뿌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런 정서와 가치관 중 경제와 관련된 것은 '사농공상주의' '부모의 희생정신' '평등주의'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 뒷받침이 됐다. 사농공상주의와 부모의 희생정신의 결합은 엄청난 교육열로 발화돼 초고속 성장에 필요한 지식자본과 인재를 만들어냈다. 평등주의는 강한 성취동기로 발달해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죽도록 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고도성장 이후 정체현상의 주범이요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요소이다. '사농공상주의', 즉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의식은 취업의 문을 스스로 좁게 만들고 있다. 고용의 미스매치 현상은 우리 경제의 심각한 구조적 취약점이다. 젊은이들이 제때 직업을 가지지 못하여 결혼연령이 늦춰지는 풍습이 만들어졌고 이 현상은 다시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인 저출산의 상당한 이유가 바로 사농공상주의에서 발아된 것이다.

부모의 무분별한 희생정신은 자녀의 자립심, 경쟁심, 윤리'도덕성을 해친다. '헬리콥터맘'을 들어본 적 있는가? 자녀가 근무하는 군부대를 배회하는 부모를 일컫는 말이다. 다 성숙한 자녀를 부모는 아직 초등학생으로 취급한다. 국가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젊은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분명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평등주의는 예부터 우리의 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옛날 부잣집은 굴뚝을 높게 만들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또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의식의 결과이다.

그러나 평등주의가 변질됐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반기업정서, 노사의 극한대립, 풀리지 않는 여야 대립현상은 왜곡된 평등주의에서 나온 결과다. 급기야 경쟁을 나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고교 평준화, 무상급식 등의 정책은 왜곡된 평등주의적 사상에 근거해 경쟁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시도이다. 경쟁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고 경쟁 없는 발전은 없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평등주의 의식은 정치와 만나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낸다. 무한복지, 대기업 때리기, 극단적 대립관계의 노조문화, 최저임금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이다. 기업의 효율성을 갉아먹고 국가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것들이다.

왜곡된 평등주의는 우리 사회를 '이중성'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돈은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임을 마음속으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돈의 중요성에 대한 솔직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SNS를 통해 넘쳐나는 글의 내용을 아무리 보아도 가난이 미덕일 뿐 부는 미덕이 아니다. 이중성은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극치를 보여준다. 이중성이 난무하는 사회는 사회적 신뢰가 형성될 수 없고,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는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우리의 핏속에 흐르는 정서와 가치관이 쉽게 바뀔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선진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서와 가치관이 반드시 시대에 맞게 변해야만 한다. 새로운 정서와 가치관의 정립 없이는 국민소득 3만달러, 4만달러는 요원할 것이다.

어느 연구자료에 의하면 연고주의적 의식에서 나온 우리의 정서와 가치관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점차 개인주의, 합리주의, 실용주의로 변해갈 것이라고 한다. 이 연구결과가 빨리 입증되기를 기대해본다. 여기에 우리의 정서와 가치관의 장단점과 한계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사회 전반에 일어나기를, 정서와 가치관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식 정책의 개발과 실행을 기대해 본다.

강병규/세영회계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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