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돈의 소리와 울림] 전관예우와 회전문 인사

1951년 서울생. 경기중고
1951년 서울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 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정부 고위관료들 퇴직 후 로펌行

대기업·외국기업 위해 인맥 동원

다시 장관 등 정무직에 나서기도

전관예우·회전문 인사 '검은 악순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하자 그가 1년여 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받은 수임료 15억원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법무부 장관 인준 청문을 할 때도 그 점이 걸렸는지 황 장관은 수임료를 기부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 같은 고액 수임료 논란은 황 장관의 경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작년에는 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안대희 전 대법관이 변호사 개업 후 불과 몇 달 만에 10억원이 넘는 수임료를 받아 논란 끝에 자진 사퇴했고,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감사원장으로 지명된 인사가 역시 과다 수임료 논란 끝에 사퇴했다.

고액 수임료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수임료 자체가 고액이기도 하지만, 전관예우를 이용해서 사건을 수임하고 고액 수임료를 챙겼다는 의혹을 사기 때문이다. 인사 청문회에서 고액 수임료가 문제가 되더라도 이들이 어떤 사건에서 누구로부터 이런 거액을 받았느냐는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다.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신뢰보호를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을 맡아서 그 같은 거액을 받았느냐 하는 점이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와 정홍원 전 총리는 모두 검찰 출신이고, 안대희 전 대법관도 검찰 출신이다. 이들처럼 검사를 오래하다가 퇴임하고 변호사를 하게 되면 주로 형사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회사법, 주식거래법, 지식재산권 등 복잡한 비즈니스 관련 법률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찾는 의뢰인은 검찰의 칼끝에 서게 된 부유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검찰 고위직을 지내고 퇴임한 지 얼마 안 되는 변호사들은 자신이 지휘했던 후배 검사와 법정에서 승부를 겨루는 셈이다. 이런 관계가 법정 내에 국한되면 그나마 다행이고, 많은 경우에 이들은 검찰에 있는 후배에게 연락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관예우'라는 우리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인데, 이런 악습이 있기 때문에 부유한 피고인들이 거액을 들여서 이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변호사를 흔히 '고용된 총잡이'라고 부르듯이 변호사가 돈을 받고 의뢰인을 대리하고 변론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또한 법원과 검찰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퇴직했더라도 한창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위 법관이나 검찰 간부를 지낸 변호사들이 후배가 재판장이나 검사로 나오는 법정에 나가서 변론을 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안이 큰 민사재판이나 유력한 피고인에 관한 형사재판에선 대법관과 검찰 간부를 지낸 변호사들이 한꺼번에 북적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위 법관과 검찰 간부를 지낸 이들이 주로 부유층을 대리하면서 법정에 나타나는 모습도 좋지 않지만,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이들이 법무장관이나 국무총리로서 국민들 앞에 다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이 아니면 총리와 장관으로 기용할 만한 사람이 없는가 하는 목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시비가 생길 가능성이 없는 인사를 기용하면 되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수첩은 그리 두껍지가 않아 보인다.

정부 고위관료를 지내다가 퇴직한 후 로펌으로 가 고문을 지낸 후에 다시 장관 등 정무직에 나서는 경우도 문제다. 공무원들은 업무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정 기간 취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로펌에서 자문하는 경우는 그런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퇴직관료들이 로펌에 있으면서 하는 일은 대기업과 외국기업을 상대로 한 컨설팅인데, 명목이 컨설팅이지 실상은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취득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인맥을 돈을 받고 대기업과 외국기업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다. 이들이 '회전문 인사'를 통해 또다시 고위 정무직에 기용된다면 이들은 국민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에게 고액 수임료를 준 이익집단을 위해 봉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규제 기구의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특히 농후하다. 이런 위원회에서 퇴직한 후 로펌에서 고문을 지내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을 다시 중요한 정무직에 기용하는 회전문 인사는 문제라고 할 것이다.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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