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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1913년의 도쿄와 '신여성' 나혜석

나혜석
나혜석

나혜석이 진명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1913년 3월이었다. 나혜석이 유학한 '여자사립미술학교'는 일본 최초의 여자미술전문학교로 천경자, 박래현 등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화가들이 다닌 곳이기도 했다. 나혜석은 이 학교에서 5년 유학생활을 마친 뒤 조선으로 돌아간다. 5년의 유학생활 동안 나혜석은 조선 최초의 근대여류미술가이자 근대여류작가인 선구적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갔다. 그것은 곧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이 새로운 여정을 나혜석은 1913년의 도쿄에서 시작하였다. 1913년의 도쿄는 새로운 열정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바로 전해인 1912년 근대 일본을 만든 메이지(明治) 천황이 죽고, 아들인 젊은 다이쇼(大正) 천황이 그 자리를 승계하면서 '강력한 아버지'로부터 해방된 젊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열정이 도쿄의 거리와 사람에게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텅스텐 전구가 보급되어 도로와 거리는 언제나 밝았다. 입센의 '인형의 집'과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같은 러시아 작가의 번역극이 연일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었다.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신여자'의 목소리와 규범에 구애되지 않은 남녀의 로맨틱한 사랑이 도시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나혜석은 축제와 같은 1913년의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해 5년을 보냈다. 이 시기 나혜석은 겨우 열여덟 살이었지만 명민했고, 섬세했으며, 예술가적 감수성으로 충만해 있었다. 제국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제국의 자유롭고도 거대한 힘에 열광하고 있었다. 나혜석은 '식민지와 제국' 그리고 '환상과 삶' 사이의 거리를 깨닫고 균형감각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젊었고, 너무 명민했으며, 너무 열정적이었다.

'경희'(1918)는 5년의 유학생활을 마치는 시점에 나혜석이 발표한 자전적 소설이다. 일본유학생 경희가 방학을 이용해서 잠시 조선에 다니러 와서 겪는 신구세대 갈등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소설 속의 경희는 구세대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갈등을 잘 감당한다. 또한 소설 속의 경희는 담백하고, 밝다.

소설 경희를 발표할 무렵 긍정적이었던 나혜석의 모습은 조선의 현실, 혹은 삶의 현실과 직면하면서 서서히 마모되어 갔다. 남자도 쉽게 취업의 기회를 잡을 수 없는 궁핍한 조선이었고 여자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복이 많다는 믿음 아래 있던 고루한 조선이었다. 이런 조선의 현실 속에서 나혜석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나혜석이 조선의 현실과 삶의 현실을 실감하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본 역시 나혜석이 귀국한 직후, 1차 세계대전 종말과 함께 경제 불황을 겪었고, 남녀 간의 낭만적인 사랑은 종종 동반자살로 끝났으며, 여성의 참정권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확보되었다. 축제와 같은 삶은 일본과 조선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혜석은 너무나 열정적이어서 평범한 삶을 인정할 수 없었고, 조선의 상황은 뛰어난 서양화가이자 작가인 신여성 나혜석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척박했다. 시대를 잘못 만난 나혜석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그녀의 그런 비극적 삶 덕분에 지금 한국 여성의 삶이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정혜영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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