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거리에서 펫숍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곳을 들러보면 눈이 휘둥그레해 진다. 단순한 애견용품점이 아니라 애견용품 '대형마트'라고 봐야 할 정도로 다양한 제품이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우리와 함께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대형마트가 우리 생활에 스며든 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 왜 인제야 펫숍이 생겨났을까? 현대인이 과거보다 반려동물에 더 열광한다는 방증인지 모른다.
어쩌면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외로운 현대인이 많아진 탓일 수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26%, 대구는 24%였는데, 이는 2000년에 비해 10%p 증가했다. 이대로라면 2030년까지 1인 가구가 전체의 30%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구상에서 '사회'는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한자 '사람 인'(人)의 유래도 사람 둘이 기댄 모습을 형상화했다. 홀로 있는 인간은 외롭다. 그래서 인간은 내게 사랑을 줄 존재, 내가 사랑해 줄 존재를 필요로 한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펫에 열광하는 현대인
반려동물이 단순히 사랑하는 동물을 넘어서 삶의 동반자, 반려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외로움이 시대 정서인 현대사회에서 '또 하나의 가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국내에서 1천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걸맞게 관련시장 규모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심지어 반려견을 위한 TV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2월 미국, 이스라엘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로 DogTV가 서비스 중이다. 또한 과거 개와 고양이에만 국한되어 있던 반려동물 대열에 이구아나, 뱀, 거북이 등 희귀동물까지 가세했다.
'펫생펫사'(Pet生Pet死'반려동물에 살고 반려동물에 죽는다)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를 뜬눈으로 밤새게 한 친구
"이 친구가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집에도 가지 않고 밤새 간호했어요."
대개 남자들은 평소에 '사랑하는 이가 아프다면 뜬눈으로 밤새며 간호하는 정도야 예삿일'이라고 호기롭게 말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이 예사롭지 않은 일을 한 순정남이 있다. 파충류 마니아 강창보(21'대경대학교 동물조련이벤트과 2학년) 씨는 지난해 자신이 관리하는 뱀이 상태가 안 좋아 보여 집에도 가지 않고 학과 파충류사에서 밤새 상태를 지켜보며 돌봤다.
강 씨는 동물이 좋아 제주도에서 경북 경산까지 온 유학생이다. 강 씨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전국에서 동물조련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대경대 동물조련이벤트과가 유일했다. 강 씨는 어려서부터 새나 개를 기르고 싶어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해 단 한 번도 반려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강 씨는 좋아하는 동물과 마음껏 어울리고 길러볼 수 있는 곳으로 진학했다.
사실 강 씨는 지난해 3월까지 뱀이 무서워 손도 대지 못했다.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평소 길러보고 싶었던 새에 온 정신이 가 있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강 씨는 파충류사에서 억지 춘향 노릇을 하며 파충류를 돌보다 파충류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강 씨가 직접 분양받아 기른 파충류가 비어디드래곤, 레오파드 게코(이상 도마뱀의 일종), 샌드보아(뱀) 등 3종에 이른다.
강 씨는 "이제는 개 한 마리보다 뱀 15마리 키우는 게 훨씬 편하다"며 "일반적으로 파충류가 주인과 정서적 교감이 잘 안 되지만 탈피하면서 점점 커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잘 키우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을 느끼는 게 파충류를 반려동물로 삼는 맛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의 퇴근을 반겨주는 은비와 희망이
이은경(34'대구 중구 동인동) 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는 지난해 11월 직장 때문에 친구 둘과 대구에 내려와 원룸에서 같이 살고 있다. 이 친구들의 이름은 '은비'와 '희망'이다. 은비와 희망이는 이 씨가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부터 기르던 반려동물로, 은비는 이 씨와 10년 지기이며 희망이는 은비가 3년 전에 낳았다. 은비와 희망이 모자는 블랙토이푸들(토이푸들은 성견의 체고가 성인 남성의 손 한뼘 정도이며, 검은털을 가진 블랙토이푸들이 가장 구하기 어렵다)이다.
은비와 희망이는 이 씨의 퇴근을 세상 누구보다 반긴다. 이 씨가 퇴근해 현관문을 열면 침대 위에 있던 은비와 희망이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이 씨의 품에 뛰어든다. 이 씨가 신발을 벗어둘 새도 없을 정도다. 친부모도 이 씨의 퇴근을 이렇게 반긴 적이 없었다. 아니, 이 씨가 대구에서 오래간만에 서울에 있는 부모님을 찾아 뵈어도 '버선발로 뛰어나올'만큼 반긴 적도 없다. 그래서 이 씨가 집에 들어왔을 때 은비와 희망이가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놔도 화가 나기는커녕 '아기'들이 귀엽기만 하다.
이 씨는 "일에 지쳐 기운 없이 돌아오더라도 현관문만 열면 날 반기는 이가 있어 힘이 난다"며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은비와 희망이를 이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아기들이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기들의 소중함을 알고부터는 사람이 없는 빈집에서 아기들이 심심할까 봐 TV를 켜놓고 출근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지금 내겐 아기들도 가족 구성원이다"고 덧붙였다.
◆새침데기 소녀, 송이
송이는 12개월 된 암컷 고슴도치이다. 2개월 전 대구 북구 침산동으로 이사를 왔다. 한집에서 사는 이는 인간 5명. 송이는 다섯 식구 중 엄마 강은경(52), 오빠 이지원(15) 이 둘이 가장 마음에 든다. 다른 식구들은 왠지 정이 안 간다. 반면에 엄마, 오빠한테는 괜스레 아양을 떨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송이는 두 식구에게만 앞니로 살짝 깨물거나 손을 핥고, 발라당 누워 배를 내보이기도 한다. 가끔 송이가 오빠 손 위에 누워 윙크라도 하면 그 모습을 놓칠세라 엄마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켠다. 운 좋게 송이가 윙크하는 모습을 찍기라도 하면 엄마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강은경 씨는 몇 해 전부터 고슴도치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강 씨는 어려서 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는 강아지를, 결혼 후에는 5년 동안 햄스터를 키운 적도 있다. 이렇듯 동물을 좋아하는 강 씨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털 알레르기'. 강아지는 키우고 싶어도 털갈이 때문에 이제 엄두도 나지 않는다. 햄스터는 괜찮을 줄 알았지만 빠지는 털이 먼지와 함께 날릴 때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고슴도치가 털도 없고 주인을 알아본단 말을 듣고 아이들 정서에도 좋겠단 생각에 '당장 분양받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머뭇거려졌다. 두 달 전 직장을 다니는 강 씨의 큰딸이 인터넷에서 '개인 사정으로 고슴도치 한 마리를 분양한다'는 글을 보고 엄마를 위해 냉큼 데려왔다.
강 씨는 "털 알레르기도 문제였지만 햄스터는 주인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가족과 정서적 교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그런데 송이는 시끄럽지도 않고 냄새도 안 나고 주인을 알아보고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니 금상첨화다"라고 했다.
글 사진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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