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다시, 죽는다 사람 하나 살지 않는 이 더럽혀진 거리 위에서
나는 사랑이 멎어 나는 드디어 죽는다
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 해는 분명히 다시 뜬다
지나가던 개 한 마리가 내 얼굴 위에다 Ⅹ줌을 갈기고
날아가던 쌍시류 두 마리가 내 콧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나는……드디어 썩기 시작한다
(……)
그리고 세월이 흘러간다
1년이 지나가도 나는 죽었으니까 도무지 세월을 모른다
2년이 지나가도 나는 죽었으니까 도무지 흘러가는 세월을 모른다 어느덧
한 30년이 흘러가 버린다
(……)
여대생 차림을 한 개떼들이 지나가고
도사님 제복을 입은 염소떼들이 지나가고
깡패들의 위신을 지닌 한 역사의 집단이 지나가도
즐거워라
우리는 죽어 버렸으니까 도무지 흘러가는 세월을 모른다
(부분. 『지상의 인간』. 문학과 지성사. 1984)
문득 그가 떠올랐다. 가끔 들여다보았던 그의 페이스북 글은 2014년 2월 5일에 멈춰 있었다. '아는 척해 온' 시인 고은과 황지우를 내리찍으면서 "나는 너다, 라고 말해버리면 이미 나는 너다,가 아니라는 것인 것이다!"고 그는 적고 있었다. 그가 이 시를 쓴 지 30년이 흘렀고, 30년 후에 그는 그 어딘가에서 이 시를 다시 쓰고 있을 것이다. '개 떼'와 '염소 떼'와 '깡패들'이 지나가도 "우리는 죽어 버렸으니까 도무지 흘러가는 세월을 모른다"고. 그는 진정한 시인이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시를 통해, 몸을 통해 보여 주고 갔다. 제대로 된 '사람 하나 살지 않는다'고, 시인은 반(反)인간이 아니라 비(非)인간을 선언하고 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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