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대통령님 어디에 계십니까?

메르스, 즉 중동호흡기증후군이 우리들에게 알려진 지 보름이 지났다. 불과 보름 만에 격리 대상자가 1천 명에 육박하고, 환자 숫자는 30명 가까이나 되고 사망자도 2명이 나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올지도 모른다. 통제 불능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대한민국은 전염병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해 전 세계적으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지난달 20일 첫 환자가 발생했다고 할 때만 해도 흘려 들었다. 다들 그랬다. 그러다 확진자 숫자가 점점 늘어 10명이 넘어서자 걱정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때도 정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맸다. 환자 가족은 물론 의사와 간호사도 감염자가 됐고 한 병원에 있던 얼굴 모르는 사람들까지 환자로 판정이 나자 난리가 났지만 당국의 대처는 달라지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줄곧 괜찮다고 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강제 격리, 출국 금지 등 대책을 쏟아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유사 증상이 나타나면 보건소로 연락하라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그러니 대책본부장의 직급을 높이고 높여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올렸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의심스럽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중동국가보다 환자가 더 많이 발생했다. 중국과 홍콩에서는 우리더러 '메르스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덮어씌웠다. 오죽하면 "이제는 바이러스도 한류냐"라는 빈정거림까지 나올까.

보건위생 분야에서 한참 후진국이라는 중국보다 더 못한 방역체계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관광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유커들이 발길을 끊을까 걱정이다. 관광 수입 감소 전망치가 1조5천억원이 된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사태가 더 악화된다면 세계보건기구(WHO)가 우리나라를 여행금지 내지 주의국으로 선정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금 당장 메르스보다 더 화급을 다투는 현안은 없다. 나라 전체로 봐도 메르스가 최대 현안이라는데 누가 이론을 제기할까. 꼭 배가 침몰하고, 비행기가 떨어지고, 땅속에서 난리가 나는 초대형 사고라야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건 아니다.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는 사고와 재해뿐만 아니라 소리없이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으로부터도 국민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 정부는 뭐가 더 급한 일인지 경중도 모르고 선후도 잘 모르는 것 같다. 1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이미 그런 조짐을 보였지만 이번에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1년 전 정부도 국민도 정신줄을 놓고 있다 보니 경황이 없어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고 위안을 삼았지만 이번에는 무슨 구실을 달아야 할까. 그때도 있어야 할 곳, 보여야 할 곳에 높은 분들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분들은 뼈아픈 경험에서도 교훈 하나 얻은 게 없는 것 같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환자 숫자와 확산되는 죽음의 공포 속에 국민은 불안해서 떨고 있는데 그분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자기들끼리 싸우기에도 바빠 불안에 떠는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은 건가. 메르스는 어느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 안위의 문제인데도 누구 하나 말이 없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괴담 유포자를 처벌하라는 것이다. 1년 전에도 들어본 구절이다. 정확한 정보만이 괴담을 잡을 수 있다. 정보가 없으면 괴담은 쑥쑥 잘 자란다. 그런데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우리 대통령도 그렇다. 잘 볼 수가 없다. 대책본부를 방문해 질책하고 격려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국민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모습도 보고 싶은데 말이다. 1년 전에도 가려운 곳 못 긁어주고, 아픈 곳 다독여 주지 못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지 않았던가.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국정이 마비된다고 난리인가.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메르스보다 더 한 난리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대통령님. 지금 무얼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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