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민국 치안을 완성하고자 중요 지명수배자 검거를 시작했다. 범인은 20억원 상당의 사기, 위조 유가증권 행사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수배자이다. 4월의 늦은 밤, 계획보다 빨리 흘러간 시간을 원망하며, 머리를 맞대고 검거 작전을 펼친다. 작전에 참여한 인원이라고 해봐야 반달곰 조장과 나.
우리는 강릉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너무 늦게 도착해 버린 수배자 이○○의 집 앞. 복도식 아파트에 출입구가 한 군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검거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수배자의 집은 꼭대기 15층! 시간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벌써 오후 11시를 훌쩍 넘겨버린 난처한 상황이었다. 출입구가 많아 잠복도 힘든 상황에 늦은 시간대 고층아파트에 들어가 검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한테 불리한 주변 상황을 검토하고 반달곰 형과 나는 이 씨가 실제로 이곳에 살고 있는지, 지금 이곳에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수배자 집의 맞은편 동은 이 씨의 집을 내려다보기에 충분히 높은 곳에 있었다. 복도식 아파트의 장점을 살려 우리는 맞은편 동에 올라 수배자의 집을 응시했다. 시커먼 남자 2명이 무슨 연유로 복도에서 서성대는지 의심스러울 법도 한데 우리를 의식하지 않는 주민들의 무심함이 고마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배자 이 씨는 우리가 응시하던 발코니 쪽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 풍채만을 보고 이 씨임을 알 수 있었다. 도주를 생활화하는 통에 검거가 어려운 수배자들은 지인이나 가족 명의의 주소지에 실제로 거주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그런 난관 속에서 오늘은 성과가 있었다. 반달곰 형과 나, 우리는 그렇게 고무된 채 맞은편 아파트 동을 빠져나와 다시 잠복 차량이 있는 장소로 내려갔다. 하지만 늦은 밤에 아이들도 있고, 진입, 검거, 호송에 어려운 문제점들이 많아 다음날 아침에 검거하기로 했다.
먼저 이 씨의 차량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복잡한 구조의 아파트 단지를 돌고 돌아 쪽문으로 보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 출입구 쪽에서 이 씨의 차량을 발견하였다. 이 씨의 차에는 중고차량 딜러라고 소개하는 자신의 명함이 있었고, 우리는 건너편에 차를 세워 그의 차량을 주시하면서 내일 출근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부터 현장 수사를 돌며 타지에 있는 이 씨의 검거를 위해 출장을 달려온 터라 잠이 몰려왔다. 적막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시간을 달래 줄 만한 그 무엇도 없는 것 같았다. 스마트폰을 습관처럼 치켜들고 '에브리팡게임'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형과 나는 단잠에 빠졌다. 새벽 5시쯤 잠을 밀어내 실눈을 겨우 뜬 나는 이 씨의 차가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 어젯밤에 세워둔 그 차량, 고급 수입 차량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믿기지 않는 현실이 벌어졌다. 차가 없어진 것이다. 좀 전까지 봤는데, 거짓말처럼 주차공간에 있던 차가 없어진 것이다. 실눈으로 확인한 지 한 시간, 아니 30분이나 지났을까, 더욱이 건너편이라지만, 잠복 차량과 이 씨 차량과의 거리는 차량 2대가 교행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이 고생을 하고도 검거치 못할 것 같은 불길함에 우리는 안절부절못했다. 진행 중인 보유 사건이 많아 언제 또다시 출장을 오게 될지도 장담치 못한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차는 분명 이 씨가 몰고 갔을 터. 만약 이 씨의 부인이 몰고 간 것이라면, 이 씨는 집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앞서 예상한 것과 같이 새벽에 출근한 것인가. 직장 주소는 명함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섣불리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출근한 게 아니라면, 이 씨의 부인이 몰고 간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직장 주소로 이동하는 동안 이 씨가 다른 곳으로 나간다면, 오늘이 비번이라 다른 곳으로 간 것이라면…. 모든 경우의 수를 곱해보니 수사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주사위를 던졌다. 30여㎞ 떨어진 직장 주소로 가보기로 했다. 한적한 국도였지만, 달리고 달려도 도착지가 멀게만 느껴졌다. 마냥 내달리는 동안 평온히 근무하는 이 씨의 모습만을 생각했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중고판매상사는 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아침을 먹기도 이른 시간에 영업을 시작할 리 없었다. 주시하고 또 주시해봐도 이 씨는 오지 않았다. '망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명함에 있던 전화번호로 그에게 전화를 했다. "제가 주차를 하면서 선생님 차를 살짝 긁었습니다. 어떻게 변상을 해드려야 할지…." 마지막 지략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그는 "제가 지금 다른 데 있고요, 차는 지금 집 앞에 있는데, 와이프한테 확인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쪽으로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저도 지금 집 쪽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통한 것 같았다.
다시 아파트를 향해 내달렸다. 처음 주차된 반대편에 차량이 있는 것을 보았다. 범인을 잡겠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아파트 진입 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씨의 부인이 내려와 차량을 확인한다. 웬일인지 앞 범퍼 사진도 찍고 어딘가에 사진을 보내는 것 같더니 전화통화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아무튼 확인을 위해서라도 이 씨는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두 시간이 흘러 풍채에 어울리지 않게 해맑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이 씨는 결국 우리 손에 잡혔다. 검거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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