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나이 어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난달 초 아는 후배를 데리고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그 전날 서울로 가던 길이었다. 내가 운전하는 차로 같이 움직인 이 후배 덕택에 올라가는 길이 그다지 졸리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워낙 재미있는 친구이기도 했고, 로스쿨 시험 준비생으로 꽤 오랫동안 공부한 탓에 불투명한 현실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을 들어주고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서울 만남의 광장을 통과하고 있었다.

복잡한 서울 진입로를 지나며 그 나름 사회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가는 순간 언쟁이 붙었다. 해묵었다면 해묵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전통시장-대형마트 휴일 관련 논란이었다. 이 후배는 "대형마트가 더 편하고, 전통시장에 없는 물건이 대형마트에 있는 경우 대형마트가 휴무하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으냐"는 논리를 폈고, "대형마트로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지 않으냐"고 말했다. 당시 대형마트 휴무 반대론자들과 기업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후배의 말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라 반박할 반듯한 논리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데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도 봐야 하는 등 집중력이 여기저기 분산돼 있었다. 결국 제대로 된 논리가 떠오르지 않자 목소리만 올라갔다. 옥신각신 난상토론을 하다 보니 후배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후배를 내려주고 내가 갈 숙소로 차를 돌리며 순간 '아차' 싶었다. 불과 몇 분 전 차에서 목소리를 올리던 내 모습이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어른들의 모습과 슬며시 겹치기 시작했다. 다름과 틀림에 대해 인정하려 들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이야기만 진실이고 옳다고 믿으며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짓누르던, 그런 어른의 모습이 불과 몇 분 전의 내 모습 같았다. '욕하면서 닮는다'더니 내가 그렇게 비난하던 '우수한 품질의 꼰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을 줄이야.

지난달은 희한하게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가 많았다. 많은 질문을 받았고 많은 대답을 했지만 그 대답들이 상대방에게 얼마만큼 만족스러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막 이야기하다가 자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후회막급해 '잠들 때 이불을 팡팡 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이야기하게 되면 편할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그게 아니다. '초학자(初學者)에게 상상지(上上智)가 있다'더니 날카로운 논리로 무장한 친구들도 꽤 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내가 들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내 경험이 100% 옳지 않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하고, 내가 말하는 것들이 내 말을 듣는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도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함을 느낀다. 생각해보니 '나보다 어린 사람'과 이야기할 때 '사람'이 아니라 '어린'에 방점을 찍고 사람을 대한 건 아닌가 다시 한 번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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