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 안드레아스'는 영화의 배경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를 관통하는 지층이다. 1906년 약 1천400명의 사상자를 낸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난 곳이자 향후 30년 안에 규모 9의 대지진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영화 '샌 안드레아스'에서 펼쳐보이는 폭발적인 상황은 과거에 실재한 일인 동시에 곧 펼쳐질 미래이기도 하다. 와장창 무너져 내리는 인류의 문명을 목격하며, 오락으로서 즐기기보다 섬뜩하게 소름이 돋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영화는 뉴스 화면으로 접했던 최근 수많은 자연재해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후쿠시마 대지진, 인도네시아 쓰나미, 허리케인 카트리나, 그리고 9'11까지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최근 대재앙 장면들이 하나하나 콜라주 되어 펼쳐지니, 그냥 신나게 즐기기에는 힘겹다.
1990년대에 '다이 하드'에서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이 위기에 처한 도시를 구하고 영웅이 되었던 것처럼, '샌 안드레아스'의 핵심 키워드는 주인공 드웨인 존슨이다. 프로레슬러 챔피언에서 영화배우로 변신,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로 우뚝 선 그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뒤를 잇는 근육질 슈퍼영웅의 면모를 한껏 과시한다. 슈왈제네거와 스탤론이 레이거니즘이 창궐하던 1980년대에 마초 근육남으로서 강력함에 방점을 찍었다면, 드웨인 존슨은 자신의 힘을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부드러운 마초 순정남 캐릭터로 변주하고 있다는 점이 살짝 다르다.
미국 LA소방대의 구조헬기 조종사인 레이(드웨인 존슨)는 아내 엠마(칼라 구기노)와 별거 중이다. 엠마와 딸 블레이크(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를 만나러 간 레이는 엠마가 새 남자 다니엘과 동거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이는 네바다의 후버댐 붕괴 사실을 전달받고 출동한다. 이때, 첫 지진이 발생한다. 가까스로 레이와 통화가 된 엠마는 레이의 지시대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헬기의 방향을 틀어 엠마가 있는 건물로 향한 레이는 엠마를 구해낸다. 차 안에 갇힌 블레이크는 우연히 만난 여행객 벤과 올리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지만, 지진은 계속된다. 아비규환 속에서 레이와 엠마는 딸 블레이크를 찾아 나서고, 블레이크는 벤과 올리와 함께 레이가 구하러 올 수 있는 고지대로 향한다.
이 영화에서 서사를 논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재난을 소재로 하는 재난 영화답게 화려한 CG와 특수효과를 통해 눈앞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부서지고, 폭발하는 엄청난 시각성의 공포를 전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건다. 헬기 조종사가 시민 구호보다는 딸을 구하기 위해 소방대 헬기의 방향을 선회한다. 무너져가는 가족을 복원하는 서사와 대규모 지진 이후 수습하는 과정이 병치되며 대단원과 해결을 향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지만, 이내 안정을 찾고, 도시는 재건될 것이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결말은 장르 서사의 당연한 귀결이지만 관객을 허탈하게 만든다. 이 모든 스펙터클 안에 인간을 향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이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박살나고, 오직 생존만을 위한 아비규환 현장에서 인간의 추악하거나 고결한 온갖 다양한 면모들이 드러남으로써 사람과 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재난 영화의 맛이다. 재난의 원인을 파헤치는 추리 구성과 멀어졌던 가족 회복의 드라마, 살기 위해 몸으로 맞서는 액션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볼거리와 감동으로 풍성해지기 마련이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과 악이 일대 혈전을 벌이는 사람 이야기는 재난 영화의 걸작 '포세이돈 어드벤처' '타워링' '타이타닉'에서 우리 영화 '해운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이에 반해 '샌 안드레아스'는 가족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나이의 여정이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고, 이제까지 보이지 않다가 마지막에 성조기를 흔들며 나타난 국가 이미지가 관객을 뜨악하게 만든다. 주야장천 부서지고 깨지는 거대한 지진 현장이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될지는 의문이다. 메르스의 공포로 잔뜩 위축된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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