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아나바다 아나?

#1

얄궂게 떨어지는 물방울은 장마의 예고편인지 태풍의 전주곡인지, 유리 밖을 두드리는 바람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코빼기만 비추고 달아난 빗방울이 그치고 온몸을 에워싸던 습기도 가라앉으려는지, 공기 중에 떠도는 음이온으로 어깨 근육은 묵직하다. 이런 날씨에 마르지도 않을 빨래를 치대고 있자니 뮤지컬 '빨래'의 뮤지컬 넘버 중 한 곡의 가사가 생각난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네 눈물도 마를 거야."

지금이야 세탁기와 탈수기가 한 몸이 되어 주부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지만, 어릴 적만 해도 시골 개울가에 삼삼오오 모인 아낙들이 평이 바른 돌덩이를 꿰차고 빨랫방망이를 사정없이 두드리던 때를 기억한다. 묵은 빨래를 깨끗이 빨아 햇볕에 살균한 뒤 풀을 먹여 다리고 나서야 번거로운 수고는 끝이 나고, 이와 함께 미운 서방 때문에 쌓인 아낙들의 피로도 함께 해소되는 게 아니었던가 싶다. 이래서 북어와 빨래는 이틀에 한 번씩 두드려 패야 하는 이유다.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온 신랑이 예뻐서 옷을 빨아 입히고 해장하라며 북엇국을 끓여 바치겠는가. 그래도 그 속엔 미움 반 스푼과 애정 한 컵과 밖에 나가서 고생한 신랑을 향한 애처로움 한 스푼이 고스란히 버무려져 있다.

#2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족해졌으니 내 집 마련을 위해 빚더미를 떠안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일명 '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란 뜻의 하우스 푸어(house poor)가 늘고 있다고 한다. 외식업의 호황 이면에는 하루 평균 25t 화물차로 450여 대 분량의 음식물쓰레기가 수거되는 현실이 있다.

반면 지구촌 저편 아프리카에서는 식량이 부족해 수많은 기아와 난민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제는 그리 신기할 것도 없고 오히려 상식처럼 여겨지는 소식이다. 가까운 북한만 해도 먹을 것에 허덕이며 물자 부족의 수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넘치는 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사함 뒤로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3

지난날의 추억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세상은 여전히 밝고 여전히 따뜻하다. 내 주변에는 혼자 사는 이를 어여삐 여겨 소박하게 담근 장아찌를 나눠 주고, 또 빈 접시를 그냥 돌려보내지 못해 소복하게 과자 한 봉지를 담아 정을 나누는 이웃이 있다. 가까이 사는 이웃을 돌아보고, 멀리는 지구촌까지 온정의 손길을 뻗는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삶이 아니겠는가.

기억은 추억 속에 묻히고 시간은 세월에 덮여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면 지구는 더욱더 건강하고 풍요로워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뮤지컬작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