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or Die!(지키느냐 아니면 죽느냐!)
치열했던 6'25전쟁 상황을 알게 해주는 이 표현은 미 8군 사령관으로 파견되어 연합군을 지휘한 워커(Walton H. Walker) 장군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대구 남구에 있는 미군부대 캠프워커와 서울 워커힐 호텔은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워커 중장은 6'25전쟁 중 가장 중요했던 낙동강전투에서 대구를 지켜냄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키고 인천 상륙작전 성공의 기틀을 마련한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대구는 우리나라의 임시 수도 역할을 하는 마지막 방어선이었고, 넘쳐나는 피란민으로 인해 전쟁 전 30만 명이었던 인구가 70만 명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북한군 입장에서도 대구는 반드시 수중에 넣어야 승리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 때문에 개전 이래 낙동강까지 진출하면서 소모한 병력과 물자, 화력 등을 보충하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쏟아붓던 상황이었다. "내가 죽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라"고 명령하며 한 치의 물러섬이 없던 워커도 당시에는 대구가 함락될 것으로 여겨 부산으로의 천도를 주장한 적이 있다고 한다. 백선엽 장군의'6. 25. 징비록'에 의하면, 이때 끝까지 대구 사수(死守)의 의지로 미군을 설득한 이가 바로 초대 경무국장(경찰총수)을 지낸 조병옥 내무부 장관 등 경찰 수뇌부였다고 한다.
조병옥은 워커에게 "대구에서 철수하면 부산도 지켜낼 수 없다. 경찰력만이라도 대구를 사수할 테니 즉각 8군 사령부 후퇴를 재고하기 바란다"고 설득했다. 그리고는 직접 지프를 타고 다니며 공포에 질린 시민들에게 "우리는 절대 대구를 적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여 물밀듯이 밀려 피란가는 공황 상태를 진정시켰다.
그 후 국군 및 연합군과 함께 1만5천여 명의 경찰도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어 북한군의 남하를 결사 저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군 제6대대와 함께 60여 명의 북한군과 교전 중 전사한 석도홍 경위,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 중 적으로부터 기습을 당하여 교전 과정에서 전사한 전수성 경사, 인민군 패잔병 1천여 명과 교전 중 사살 50명 체포 9명의 전과를 올리고 전사한 송주필 경감, 미군부대와 함께 탄약 운반 도중 적의 기습으로 전사한 장지오 순경, 달성군에서 무장공비 20여 명과 교전 중 5명을 사살하고 전사한 신연수 경위 등 197명의 경찰 선배들이 조국수호에 목숨을 바쳤다. 그들의 고귀한 혼은 현재 다부동전적기념관 구국경찰충혼비에 고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경찰의 필사즉생(必死則生) 정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대구 방어선은 무너졌을지도 모르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전세의 역전도 장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대구를 사랑하고 조국을 지키려 했던 선배들 덕분에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있는 것이고, 6'25전쟁 발발 65주년이 되는 지금,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후배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전쟁을 잊은 민족에게는 평화가 없다"는 말이 있다. 전쟁의 참혹함은 역사가 증명해 주었고, 그러한 참혹함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가 더욱 중요하다.
잊을 만하면 발발하는 북한의 도발과 위협은 철저한 안보 태세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일깨우고 있다. 다시 한 번 전쟁의 의미를 되새겨 이 땅에서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결의를 다져야겠다. 이것만이 순국선열이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헛되지 않도록 하는 길일 것이다.
이상식/대구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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