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권영진 시장의 목숨걸기

큼지막한 현수막 속에 단색 한복을 입은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 결연한 표정으로 마치 전쟁에 나서기 직전의 무사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가 내걸었던 현수막이다. '권영진이 목숨 겁니다'는 글귀도 적혀 있었다.

'연출하기 쉽지 않은 포즈에, 목숨까지 걸겠다'고 천명한 권 시장에 대한 첫인상은 이처럼 강렬했다. 절박함이 묻어났고, 자신감도 느낄 수 있었다. '쇼맨십이 강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목숨까지 걸겠다'는 말의 진정성도 궁금했다. '권영진'에 대한 첫인상이자 지금까지 권 시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1년 전의 모습이다.

다음 달 1일 권 시장은 대구시장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지난 1년간 그는 굳이 목숨까지 운운하지 않더라도 현수막 속 결연함과 다짐처럼 열정적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 일과 후, 주말'휴일 등을 가리지 않고 고질, 악성 민원'현안 등을 찾아 대구 곳곳을 누볐다. 사업, 예산이 필요하다면 국회로, 정부 부처로 뛰어다니고, 여관에 몸을 누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선제공격의 명수' 같은 모습도 보였다. 지금까지 행정에선 '더 끈질긴 쪽이 이긴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민원인이든 공무원이든 상대가 포기할 때까지 더 잘 버티는 쪽이 이기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권 시장은 피하는 법이 없었다. 고질적인 민원'현안과 마주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고, 오히려 문제의 현장에 먼저 찾아가 듣고 함께 고민했다. 이러한 시장의 선제공격과 정면 돌파에 민원인들과 시위자들은 무장해제 됐고, 해결 여부를 떠나 하나 둘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혼선과 아쉬움도 있었다. 제대로 현안을 파악하기도 전에 섣부른 발언으로 시정에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이 대표적이다.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없던 일이 됐다.

'현장 행정이 지나치다', '민원 처리만 하느냐', '대구시정을 위한 큰 그림을 왜 안 그리느냐' 등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간부 공무원들이 시장 (대면) 결재를 받으러 갔다가 만나지 못해 일주일을 기다리다 결국 서면 결재를 넣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또 광폭 행보로 시장실을 비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취임과 함께 시청에 들어간 측근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형 사업 등 이렇다 할 성과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경북도청 이전터 개발, 창조경제단지 조성 등 대구의 난제들을 순조롭게 풀어내고, 대규모 행사'사업이었던 물포럼 개최, 도시철도 3호선 개통 등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러나 이는 전임 시장 때 시작했거나 추진되던 사업인 만큼 전적으로 권 시장의 공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취임 1년.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성과를 얘기하기에는 적당한 기간이라고도 보기 힘들다. 그래도 물포럼 행사를 물산업 클러스터로 잘 연결한 덕에 물 관련 산업을 대구가 선점할 수 있게 됐고, '가'급 국가보안목표시설인 제3 정부통합전산센터를 다른 시'도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유치하기도 했다. 역외 기업 국가산업단지 유치 성과 등도 머지않아 빛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년, 비교적 가까이에서 권 시장을 지켜봤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대구와 시정에 변화'혁신의 바람과 새롭고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 쇼맨십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쇼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도 생겼다.

'결연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목숨을 걸겠다'는 그의 고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잊어서는 안 될 시민과의 약속이다. 강렬했던 그의 첫인상, '대구를 위해 모든 것을 걸 것 같은 느낌', '대구를 위해 일을 냈으면 좋겠다'는 그에 대한 믿음과 바람이 부디 틀리지 않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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