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황교안은 희생자다

"이런 사람이 국무총리 후보라고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황교안 법무장관의 총리 임명을 반대하는 국민이 내건 글귀다. 보는 국민은 이 글만으로도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는 한국 남자면 피할 수 없는 군대를 피부병으로 면제받았다. 그러나 경력을 보면 국방의무는 못해도 법조 생활은 잘 누린 것 같다. 변호사로 16개월 동안 16억원을 벌었다. 번 돈의 사회기부 약속을 1억3천만원쯤으로 생색낸 듯도 하다. 뒤늦게 혹은 쫓기듯 낸 것 같은 세금 흔적 등 속 보이는 짓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속한 주류(主流)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자신만 그런가? 앞서 낙마한 총리, 장관 후보도 비슷했다. 지금의 '사소한' 일은 주류 사회에서 전혀 문제없는, 너무나 익숙하고 흔한 현상이다. 굳이 잘못이 있다면 운이 나빴을 뿐이다. 좀 더 근원을 따지면 그는 조선 유교 사회의 병폐가 남긴 희생자다. 이런 희생자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우리의 불행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은 유교, 주자 성리학을 떠받들었다. 다른 학문이나 사상, 종교는 철저히 배척했다. 특히 당(黨)과 학파(學派)가 다르면 유교 경전과 한 자만 달라도 적으로 몰아 목숨까지 앗았다. 그런 주자 유학 가르침 중 하나가 '앎(知)과 행(行)'이다. 그러나 앎이 우선이고 앎의 행 즉 실천은 다음이다. 주자는 "앎과 행은 두 발을 번갈아 움직이는 것과 같다. 선후를 따지면 앎이 먼저고 경중을 헤아리면 행이 중하다"고 했다. 조선 주류 사회는 앎에 치우쳐 행에는 소홀했다. 앎과 행이 따로인 이중사회였다.

지행합일(知行合一)과는 다른 풍조였다. '앎의 중시와 행의 경시'로 결국 나라도 망하고 유학도 잃고 말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비주류 학자 정제두(鄭齊斗)는 조선이 배척한, '앎과 행을 함께 중시'한 양명학(陽明學)에 빠졌다. "알기만 하고 행하지 못하는 자와 행함만 힘쓰고 알지 못하는 자는 모두 하나만 얻고 하나는 잃은 것이니 지행의 본모습을 잃었기 때문에 둘로 가른 것"이라는 믿음은 조선 주류 생각과 분명 달랐다. 그래서 관(官) 진출도 포기했다. 집도 서울에서 경기 안양, 강화도로 옮겨 다녔다. 뜻을 펼치기엔 서울은 너무 위험했으리라. 정인보 등 '강화파'라 불리는 많은 문도(門徒)가 그의 가르침에 따라 '앎과 행'을 위해 친일의 길 대신 독립운동을 벌인 이유다.

황 장관은 앎과 행이 따로인 주류 사회를 따랐을 뿐이다. 그러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뒷사람에게는 좋은 교훈은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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