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힐링토크] 마음을 공부하면 뇌와 몸이 바뀐다…한국심리학 대부 장현갑 씨

장현갑 교수는 국내에서는 상복이 없었지만 외국의 상은 많이 받았다. 책도
장현갑 교수는 국내에서는 상복이 없었지만 외국의 상은 많이 받았다. 책도 '마음 챙김''마음vs뇌' '생각정원'등 수십 권을 펴냈다. 강습현 focus118@hanmail.net

반세기 동안, 그의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던 한 생각은 '마음과 뇌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학부를 졸업하고 의과대학 생리학 교실에서 수년간 쥐와 함께하면서 뇌와 마음의 관계에 매달렸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마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스스로 정신분석을 받아보기도 하였으며, 50대 접어들고부터는 지리산 근방의 선원에 들어가 사마타 수행과 참선수행도 경험해 보았다. 60대에는 명상과 의학의 접목을 시도한 '통합의학'의 연구와 보급에 앞장섰으며 이를 심리치료에 적용하려는 '명상치유학회'를 창립하는데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그 결과 2001년부터 세계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 '인더월드' '사이언스& 엔지니어링' '메디슨&헬스케어'등 5개 분야에 걸쳐 9년 연속 등재되었다. 2005년 영국 국제인명센터로부터 100대 교육자에 선정되었고, 2006년 명예의 전당에 영구 헌정되었다. 또 2006년에 는 미국인명협회로부터 '500인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2009년에는 '2009 Man of The Year 50'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심리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장현갑(73'영남대 명예교수) 씨를 만나기 위해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있는 그의 마인드플러스 스트레스대처연구소를 찾았다.

-편안한 웃음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 챙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때문인지 좀 더 여유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편안한 웃음은 편안한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늘 행복하다는 이야기인가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에는 욕심을 가지지 않았고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마음 챙김'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험에 대해 깨어 있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나고 있는 나를 조용히 지켜보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느껴지며 시간이 지나가면 어떻게 바뀌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런 공부를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요.

▶행복도 훈련입니다. 다음 6가지를 계속하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첫째가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자유롭게 하고,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행복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행복을 매기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지요. 셋째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에 매진하라. 넷째는 단순한 일을 좋아하라. 다섯째는 심신을 수련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감사하라. 만족하라는 것이지요.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의 뇌는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분노하거나 공격하려는 부정적인 성향들이 유전자로 박혀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그것으로 흘러가버립니다. 행복하려면 이런 사슬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 한 실험이 있습니다. 교인 20명을 모아서 고무밴드 다섯 개를 주며 왼팔에 끼워두고 불평불만이 일어나면 왼팔에서 오른팔로 옮기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런 훈련을 꾸준히 한 결과 4~8개월이 지나고 나니 하루에 하나의 고무줄도 옮길 필요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마음도 훈련하면 바뀔 수 있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이야기인가요.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12살에서 80살 노인을 대상으로 일기 쓰기를 시켰습니다. 20명은 감사의 내용을 일기로 쓰고, 반은 아무것이나 쓰라고 했지요. 감사의 일기를 쓴 집단의 4분의 3이 행복지수가 높아졌습니다. 또 일의 능률이나 운동수행 능력도 좋아졌지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지요.

-연구하신 '통합의학'은 마음이 바뀌면 몸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면 건강해질 수 있습니까.

▶명상을 하면 느린 뇌파인 세타파가 나옵니다. 세타파는 각성파와 수면파 사이에 있는 것으로 명상을 하면 몸은 고요하고 마음은 별처럼 또렷해집니다. 마음이 안정되면 병이 저절로 치유되고 힐링이 되지요. 하버드의대 순환기내과팀의 연구 내용입니다. 오랫동안 마음을 수련한 20명과 8개월간 수련한 20명 그리고 경험이 없는 20명의 혈액을 채취해 유전자 활동을 분석했습니다. 유전자 활동의 차이가 명상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2천200개의 활동 차이가 났고. 8주간 명상한 사람과는 1천600개의 차이가 났습니다. 결론적으로 명상으로 유전자 구조를 바꿀 수 없지만 몸에 유익한 유전자 활동을 선택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평화롭게 하면 몸이 건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펴낸 '생각정원'에서는 21일이면 인생이 바뀐다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뇌가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뇌가 마음을 바꿀 수 있고 마음 역시 뇌와 몸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뇌가소성' 혹은 '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21일이면 뇌 속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인간의 뇌는 1천억 개의 신경이 있습니다. 한 개의 생각이 일어나면 수백만 개의 신경 사슬이 만들어졌다 헤어집니다. 이를 반복하면 굳어집니다. 좋은 생각을 계속 반복하면 21일 차에 생각의 덩어리 즉 생각의 사슬이 만들어집니다. 생각이 바뀌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을 스스로 경험하게 되는 큰 사건이 있었지요.

▶명상 공부를 더하기 위해 1997년 국제적 명상 도시로 알려진 미국의 애리조나로 떠났습니다. 3개월간의 안거를 마칠 때쯤 여름방학을 맞아 부인과 딸이 대구에서 왔지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투산지역에 사는 제자를 만나러 가던 중 끔찍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이 사고로 아내와 딸은 숨졌고 나와 아들은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다리가 부러져 꼬박 4개월간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원망도 하고 절망도 했지만 '나는 반드시 일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자 기적적으로 6개월 만에 일어설 수가 있었지요. 사고 후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이라는 책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의미다'는 책 구절을 수십만 번 되뇌면서 마음을 추슬렀지요.

-그 이후 마음공부에 더 매달리게 되었나요.

▶실성한 것처럼 마음공부를 했습니다. 나의 고통을 치료한 만큼 남의 고통도 치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이지요. 10년 가까이 마음공부를 한 끝에 2007년 그 결과물이 완성됐습니다. 바로 한국형 '마음 챙김 명상'(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프로그램입니다. 온갖 생각들을 떠올려 그 생각들을 찰나에 부수어버리는, 스트레스에 관련된 질환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시련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을 듯합니다.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 있다고 남을 비난하고 세상을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빠지면서 단련하는 것이지요. 나는 넘어지면 돌멩이 하나를 쥐고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힘으로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힐링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1998년 책을 번역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했고 '자기 치유'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힐링은 몸과 마음의 조화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60년대 초 대학입학 당시 심리학은 낯선 학문이었지요.

▶대구 경북에서는 최초의 심리학도인 셈입니다. 아버님이 생물선생님이셨습니다. 고2 때 카운슬러 교육이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아버님이 이 교육을 받으셨지요. 3개월 공부하고 오셨는데 교재를 보게 됐습니다. 교육심리학이었는데 아주 흥미 있었습니다. 그걸 배우고 싶어 서울대 심리학과를 선택했습니다.

-대학에서 승승장구했지요.

▶초창기에는 새로운 영역을 겁 없이 뛰어들었습니다. 27세에 이미 서울대 전임교수가 되었지요. 실험논문인 동물실험논문이 1967년에 미국 심리학회지에 실렸습니다. 한국에서 최초였지요. 이어서 그다음 해에 브레인 리서치 최고의 저널에 두 편이 실렸습니다. 뇌에 관한 해마연구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했습니다.

-왜 서울대학교에서 영남대학교로 오게 됐나요.

▶서울대에서 10년 있었습니다. 서울대가 관악으로 옮기면서 의과대학연구실이 그쪽으로 통합됐지요. 장비도 없고 실험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막 연구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을 무렵이어서 어떻게 하면 실험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고향 바로 이웃에 계셨던 분이 영남대 총장이 되면서 제안이 들어왔지요. 5만달러를 들여 장비를 해 줄 테니 영남대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큰 꿈을 안고 왔습니다.

-다시 서울대로 갈 생각은 안 하셨나요.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7년 동안 사람을 뽑지 않았습니다. 나를 기다려준 것이지요. 그런데 나는 대구에서 깃대를 꽂고 싶었습니다. 대구가 고향이고 영남대학교에서 뜻을 같이한 동지들도 많았고 의미도 있었습니다.

-학자는 연구실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회 현상에 대해 방관하는 자는 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문제에 뛰어들어야 진정한 학자이지요. 이론이 탄탄하면 실제 응용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현실에 맞는 방법론을 추출해야 하는 것이지요.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미국 이야기만 하면 안 됩니다. 새우를 잡으려면 새우 잡는 어구가 필요하지만, 새우 잡는 어구 하나로 모든 고기를 잡으려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좌우명이 있습니까.

▶녹슬어 없어지는 연장보다는 닳아서 없어지는 연장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쓰지 않으면 녹이 습니다. 매일 열심히 하다 보면 닳아서 없어지는, 사회에 유용한 연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원하는 대로 살고 싶습니다. 과수원 속에서 자라서인지 과수원이 좋습니다. 충북 괴산 즈음에 살면서 건강이 허락하면 여생을 도 닦으면서 보내고 싶습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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