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전우치

이번 6월 수능 모의고사에 출제된 '전우치전'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름은 매우 익숙한 작품이다. 고전소설 가운데 가장 가벼운 성격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는 '전우치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먼저 소설의 주인공 전우치는 16세기 중종과 명종 때 주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이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이나 이기의 '송와잡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와 같은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전우치가 천도를 따 왔다는 이야기나, 주문을 외워 병을 물리쳤다는 이야기, 술 취한 여우를 잡아 그로부터 도술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소설의 삽화로 들어가 있다. 그 외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나 이익의 '성호사설', 허균의 '성소부부고' 등의 책들에도 그에 대해 기록들이 소개되어 있다.

기록들을 보면 전우치가 도술과 의술에 능하고, 귀신을 잘 부리는 도교 사상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점은 공통점이 있다. 그의 출생지에 대해서 대부분의 기록은 송도 혹은 해서 지방 출신이라고 하지만 '청장관전서'에는 담양 사람이라고 한다.(본관이 담양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는 서울에서 미관말직에 있다가 사직하고 송도에 은거하면서 도술가로 유명해졌지만 백성을 현혹시킨다는 죄로 옥사하게 된다. '지봉유설'에는 그가 몰락한 양반(洛中賤儒)출신이라고 했지만, 소설에서는 그의 출신을 언급하지 않은 판본과 몰락한 양반 출신이라는 판본, 관노의 아들이라는 판본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출신이 어찌 됐건 그는 유학을 숭상하던 조선시대 양반 주류 계급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그의 행적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과장이 덧붙여지면서 소설 '전우치전'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항에 떠돌던 신비한 이야기나 다른 이적(異蹟)을 보인 사람들의 이야기들까지도 소설 '전우치전'으로 들어오면서 '전우치전'은 보통의 영웅소설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보통의 영웅소설들은 주인공이 어려서 고난을 겪지만 가문의 재건이나 입신양명과 같은 목표를 향해서 달려간다. 그래서 주인공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면 소설은 비로소 끝이 난다. 그렇지만 '전우치전'은 여러 개의 삽화가 나열되어 있어서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 들어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핵심 인물을 제외하고 매회 다른 인물이 등장하며,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피카레스크식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전우치전을 영상화한다면 영화보다는 20회 정도의 미니시리즈가 적절하다)

주인공이 주류 계급이 아니었다는 점과 주인공에게 성취해야 할 뚜렷한 목표가 없다는 것은 작품의 성격과 주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전우치는 흉년에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온 선관인 것처럼 왕을 속여 황금 들보를 만들게 하고, 여러 번 왕을 골탕먹인다. 하급 관리로 들어가서 가달산의 도적 엄준을 토벌하기도 하지만, 이때도 하급 관리이면서 출정하는 모습은 왕처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수 있듯이 그에게 애초에 충(忠)이라는 유교적 윤리는 없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억울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는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친구의 상사병을 해결하기 위해 과부의 정절을 훼손하려고 하다가 강림도령으로부터 벌을 받기도 하는 등 정의를 위한다고 보기는 어렵기도 하다. 그리고 잘난 척하는 선비들의 성기가 없어지게 만들거나 술자리 기생들로 선비들의 부인들을 데리고 오는 장면은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통쾌한 부분이다. 전우치는 지친 민초들을 가르치는 영웅이 아니라 그냥 함께하면서 통쾌함을 주는 그런 존재로 사랑을 받아왔던 것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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