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징후 중 하나가 '괴담'과 '유언비어'다. 지금 한반도를 엄습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어두운 그림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공포와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괴담이다. 괴담이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는 증거다. 메르스 첫 환자 발병 후 감염자 수는 확확 늘어나 방역 당국이 격리 관찰하고 있는 대상자가 2천300명을 넘어섰다. 감염자 5명이 사망하고, 3차 감염자도 발생했다.(7일 오후 10시 현재) 당국자들은 여전히 허둥대고, 재난 대처 시스템은 부실하고, 컨트롤타워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메르스 사태는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니 국가적 위기이고 비상사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는 보다 더 근원적인 국가적 위기의 징후에 불과하다. 어느 사회나 홍수와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 기아와 전쟁과 같은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이러한 사태들은 사회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지만, 우리가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갖춘다면 위기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는 결코 위기가 아니다. 독일과 미국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음에도 효과적인 질병관리 시스템 덕분에 메르스 2차 감염은 1명도 없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메르스가 이처럼 짧은 시간에 확산되었다는 것은 제대로 된 대응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더 근원적인 위기이다.
위기 대처 능력의 부재는 바로 괴담과 유언비어를 만들어낸다. 괴담(怪談)은 글자 그대로 괴상한 이야기고, 유언비어(流言蜚語)는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을 말한다. 소문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부산물이다. 소문의 일종인 괴담과 유언비어는 공포에서 기인하고 또 불안감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런데 효과적인 질병 대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괴담 유포자 엄벌 방침을 거듭해서 발표하는 것을 보면, 정부는 메르스 같은 질병보다는 괴담을 더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괴담은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의 징후다. 이 사실을 알려면 괴담과 유언비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괴담과 유언비어는 어떻게 생성될까? 첫째, 유언비어는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이다. 어떤 상황과 사실에 대해 집단적 관심이 없다면, 유언비어는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예컨대 누가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에서 거래되는 낙타 값에 관해서 관심을 갖겠는가? 그렇지만 누군가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왔다고 말하면 우리는 언제 다녀왔는지, 어디를 방문했는지, 어디에서 치료를 받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둘째, 괴담과 유언비어는 '공포'를 먹고 자라난다. 괴담과 유언비어는 낯선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정서적 안정감이 훼손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위기를 거치고 평정을 되찾으면 괴담과 유언비어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염성이 비교적 낮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치사율 40%라는 말에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셋째, 괴담과 유언비어는 '근거 없는' 소문이다. 사람들은 낯선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으레 설명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뜻밖의 재난이 닥치면 상황을 설명하고, 통제하고, 예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정부가 정보를 틀어쥐고 아무런 공식적 설명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사람들은 이 상황을 비공식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괴담과 유언비어는 만들어진다.
이처럼 괴담과 유언비어는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을 때 발생한다. 정부가 투명하지 못해 신뢰를 받지 못할 때 괴담과 유언비어는 창궐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메르스 사태가 위기인 것은 이에 관한 온갖 괴담들이 "정부는 과연 신뢰받을 수 있는가?"라고 엄중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진우(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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