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우리 경제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는 점에 대한 이견은 없어 보인다. 다만 어디까지, 얼마나 떨어지느냐가 관건이다. 일각에서는 신종플루나 세월호 사태 때를 빗대어 전망하고 있다. 어디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정부 대응도 달리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활동 총체적 침체
메르스 감염자가 속출하면서 대중이 모이는 행사가 잇따라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시민들이 모이는 공공장소나 건물의 위생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문화, 종교, 건설업 등 산업과 일반 생활 전반이 '메르스'의 영향으로 급속히 위축되는 모습이다. 영화관 관람이 크게 줄고 공연이 잇따라 연기되는 등 문화계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우선 대중이 모이는 영화관은 관객이 급감했다. 4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평일인 2, 3일 이틀간 극장에는 43만6천 명이 들었다. 이는 전주 동기 대비 27% 감소한 수치다.
유커(중국인 관광객) 등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수도 급감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일 기준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 예약 취소객은 전날 2천500명에서 7천 명으로 하루 새 3배나 급증했다. 사스 사태가 있던 지난 2003년 한국이 '방역 모범국'이었음에도 관광객이 11% 감소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메르스로 인한 관광객 감소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번 외국인 관광객 감소 정도에 따라 경제적 피해는 연간 최대 2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30% 감소할 경우 여행수입은 5조9천410억원 줄어들고, 50%가 감소하면 9조9천18억원이 급감한다. 이로 인한 음식점과 숙박서비스 시설의 매출 감소는 각각 12조3천693억원, 20조6천155억원이며 직'간접적 고용 감소 효과도 각각 15만5천60명, 25만8천416명에 달해 피해가 막대할 것이란 전망이다.
건설업계도 위축, 제2의 중동 붐을 놓칠까 봐 고민에 빠졌다. 중동 현지에 파견된 생산직원 가운데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사업장 130여 개 가운데 80%가 중동 지역에 집중돼 있고,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도 7천 명에 육박한다.
◆신종플루냐 세월호냐
메르스 사태를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악몽에 비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신종플루의 경우 4월에 첫 감염자가 생기고 8월 첫 사망자가 방생하는 등 메르스 보다 확산 속도는 늦었으나, 같은 해 11월엔 국가 전염병 재난 단계가 최고수준인 '심각'으로 격상됐다.
당시 휴교는 물론 수학여행, 전국 단위의 축제도 취소됐으며 전군에 휴가 자제령까지 내렸다. 2008년 금융위기로 경제가 가뜩이나 휘청거리는 마당에 전염병까지 겹치며 나라 전체가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한국은행 소비자 심리지수(CCSI)는 2009년 10월 120포인트(p)에서 11월 115p로 급감했으며 12월에도 114p로 추가 하락했다. 통상 연말 소비심리는 개선되지만 수치는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3/4분기 여행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9%나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까지 합세해 경제 성장률은 2009년 3/4분기 2.8%(전 분기 대비)에서 4/4분기 0.4%로 급락했다.
다른 일각에서는 세월호 사태의 재연을 예측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는 지난해 말까지 이어져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흥주점'노래방'콘도'음식점 등에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세월호 발생 직후 보름간 관광객도 5천476건(약 18만8천 명) 취소되면서 관련업계는 수 백억원의 손실을 봤다. 정부가 피해업종의 자영업자에 대한 맞춤형 대책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 정책에 끼치는 영향
메르스 사태는 추가경정예산과 금리 등 경제 정책 전반에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우선 정부가 접어뒀던 추경 편성 카드를 다시 꺼내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경기 상황이 국가재정법 제89조상 추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인식했으나 갑자기 17조~20조원가량의 추경 편성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 결손이 지난해 수준인 11조원까지는 아니더라도 7조~9조원 수준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고, 메르스로 인한 영향을 극복하려면 세수 부족분을 메우는 세입 추경뿐 아니라 정부 지출을 늘리는 세출 추경도 해야 하기 때문에 규모가 2013년 17조3천억원 수준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추경에 반대하던 야당도 "메르스 사태 해결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청와대가 추경 편성을 요청한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적극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한국은행이 11일 결정할 기준금리(현재 연 1.75%) 인하에도 메르스를 대입하는 분위기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경기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8월과 10월, 올해 3월 기준금리를 내렸다가 지난 4월과 5월엔 '향후 경기를 지켜보겠다'며 금리를 동결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말부터 해외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금리 인하 관측이 늘었다. 내수 회복이 미미한 가운데 수출은 지난달 10.9%(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했다. 가파른 엔화 약세를 원화가 못 쫓아가면서 원'엔 환율은 7년 만의 최저치인 100엔당 890원에 다가섰다.
특히 아시아 신흥국인 태국이 금리를 연 1.5%로 내린 반면 미국이 오는 9월 금리 인상을 시사한 만큼 우리가 금리를 내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상전 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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