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메르스보다 무서운 국회병<國會病>

지난 보름여 간 있는 듯 없는 듯 유독 조용한 곳이 있다. 국회(國會)다. 명절에 사람과 차량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도심처럼 정치판은 온통 쥐죽은 듯했다. 명색이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데도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막 커질 무렵 청와대와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입에 거품을 물던 국회가 여야 할 것 없이 이내 일제히 입을 닫았다. 휴전이 아니라 꽁무니를 빼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의 무능과 대통령의 불통은 국민 귀에 못이 박힐 만큼 익숙한 일이다. 위기관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허둥대고 국민과는 동떨어졌다. 그런데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는 한술 더 떠 아예 투명인간이 됐다. 국가재난 상황에 먼저 호들갑을 떨어도 시원찮을 마당인데도 말이다. 민심을 다독이고 정부의 재난 관리에 초당적으로 협조해야 할 국회가 팔짱만 낀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 정치인들이 누군가. 제 주장과 정당의 이해에 있어서는 사사건건 따지고 끝장을 보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도 여야가 제각각 메르스 특위 하나 달랑 만들어놓고는 불구경하듯 했다.

성난 여론에 뒤늦게 여야가 7일 4+4 회동을 갖고 초당적 협력에 합의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지 18일 만이다. 그 사이 국민 6명이 희생됐고 확진자만 87명이다. 2천 명 넘는 국민이 격리됐다. 이게 호전적이고 끈질기기로 치면 메르스도 당해낼 재주가 없는 대한민국 국회의 진면목이다. 신종 감염병은 국경도 정해진 순서도 없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생한 후 여태껏 국회는 무엇을 했나. 방역과 구호체계에 관한 법률과 법안을 다듬고 격리 조치에 필요한 기준과 범위를 세세히 정하는 등 미리 대비책을 세워야 함에도 먼 나라의 일로 치부했다.

보통사람은 상상도 못하는 온갖 특혜에다 대우를 받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때는 그림자조차 찾기 힘든 우리 국회의 수준은 한마디로 '먹튀'다. 프로 스포츠계에서 고액 연봉을 받고는 팀에 아무런 역할을 못하는 소위 먹튀라고 해봐야 고작 한둘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에서는 먹튀만 무려 300명이다. 오죽하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먼저 나서서 정보 공개를 유도하고 정부와의 역할 분담을 종용했을까.

우리 정치판은 '주먹밥'이 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시기에 '죽'이 됐다. 국민이 위험에 처하고 국가가 위기에 봉착하면 몸 사리지 않고 가장 먼저 나서야 할 대표 기관이 흐물흐물한 죽이 됐다면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은 보나마나다. 이러니 한 여론조사에서 '국회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왜 고작 5%인지를 알겠다. 국민이 표를 준 뜻을 망각하고 스스로 자취를 숨긴 국회를 세금으로 비싼 밥만 축내는 대표기관이라고 부르면 정말 실례인가.

에도막부 초기 로쥬(老中'정무를 관장하고 다이묘를 감독한 직책)로 명성이 높은 아키모토 다카토모는 "먼저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준은 백성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국민의 대표라는 말만 앞세우고 국가 재난에서 비켜선 정치판이라면 이해도 행동도 느려 쓸모가 없는 사람이나 부류, 즉 '수수'(垂垂)라고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국회에 국민의 신뢰는 사치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선수도 능력 있는 팀을 이길 수 없다. 능력이 출중한 인재 한두 명으로는 이길 확률이 희박하다는 말이다. 모든 대책과 관리를 정부와 지자체, 민간 의료기관에만 맡겨놓고 다리 꼬고 앉은 국회가 있다면 돌발사태에서 승산을 따진다는 것조차 부질없다. 19번 판을 갈아도 전혀 변하지 않는 국회, 책임감'희생이라는 말 자체가 부끄러운 국회와 정치를 울타리 삼아 수천만 명이 서로 등 기대고 살아갈 일이 힘겹다. 이런 국회를 지켜보는 국민 심정은 어떨까. '앓느니 죽는다'는 말이 꼭 어울린다. 메르스도 큰 문제지만 우리 국회와 정치 고질병을 바로잡을 맞춤 처방전이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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