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집단의식의 반영일까. 영화들은 장래에 일어나는 일을 미리 보여주곤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인해 몇 편의 영화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13년 작 미국 영화 '월드워Z'가 그 중 하나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해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가는 내용인데, 바이러스 최초 발생지가 공교롭게도 경기도 평택이다. 더구나 평택은 최근에 탄저균 미군기지 배달 사고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같은 해 개봉된 한국영화 '감기'는 초기에 진압되어야 할 치명적 감기 바이러스가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인다는 점에서 요즘 상황과 많이 닮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은 방역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갈팡질팡하는 당국이 괴담 유포자를 잡겠다고 엄포를 놓는 모습을 조롱한 바 있다.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세월호의 흔적을 떠올린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처음 나왔을 때 정부는 "전파력이 약해 통제가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세월호와 메르스는 전혀 다른 성격의 재앙이지만, 골든타임을 놓쳤으며 수습 과정에서의 총체적 난맥상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마치'다른 얼굴을 한 같은 사건'인 듯 느껴진다.
의료 선진국이라는 자부심도 함께 무너졌다. 이번에도 역시 '돈'이 문제였다. 우리가 자랑한 의료 선진화는 '돈이 되는' 분야에 국한된 것이었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방역 시스템은 돈이 되지 않은 탓에 방치돼 있음이 드러났다. 격리병실은 태부족했고 공공병상 수는 OECD 국가 중 꼴찌였다.
메르스 대책을 진두지휘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전공이 의료나 복지가 아니라 경제학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능력이 문제일 뿐 전공 일치자를 장관으로 써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정부가 의료와 복지 분야마저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지 않은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존재 의미는 재앙 때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세금 내고 군대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과 SNS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사자성어가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아날 방법을 도모한다'는 뜻인데 이 말보다 무서운 괴담이 또 있을까. 정부는 총력을 다해 메르스 사태를 해결해 각자도생이란 말이 쑥 들어가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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