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 중 으뜸 순위에 오를 만큼 '배우'는 무척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직업이다. 그런데 요즘 배우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지 않고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빛나기 어렵다. 그만큼 배우를 준비하는 지망생이 많고, 부가가치적인 측면에서 실력이 뛰어난 연습생들이 줄을 지어 연예계 등용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배우가 마냥 아름다운 직업인 것만은 아니다. 주어진 배역에 젖어들기까지는 많은 고달픈 현실과 부딪쳐야 하고, 얼굴 주름 하나까지 연기로 소화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의 배역을 맡기 위해 수많은 얼굴로 울고 웃어야 하며, 화려한 분칠 뒤에서 고뇌해야 한다. 그래서 배우란 평생을 배우는 직업이라 하지 않던가.
작가 또는 감독의 페르소나를 가감 없이 표현하는 배우의 열연은 소름이 돋을 만큼 아찔한 카타르시스를 방출한다. 그런데 관객들은 덜 익은 떫은맛은 즐기지 않는다. 자두가 붉어지는 데 시간이 걸리듯, 거친 비바람과 태풍 몇 개쯤은 거뜬히 견뎌낼 수 있는 근성, 그것이 깊은맛을 내는 배우로 성장시킨다. 배우는 관객의 사랑을 먹고, 관객은 배우가 맡은 배역에 깃든 인생을 통해 정화하고 숨을 쉬는 것이기에, 배우와 관객은 상생 관계를 이룬다.
중국의 '모죽'이라는 대나무는 처음 5년 동안은 작은 순만 자라고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물이나 거름을 계속 주지 않으면 죽어버린다. 모죽은 5년 동안 땅속에 뿌리를 깊게 박고 기틀을 마련한 뒤 모든 영양분을 축적하고서야 비로소 하루 10㎝씩 자라기 시작한다. 나비는 또 어떤가?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자라기까지 정교하게 지은 번데기 안에서의 시간을 참아내지 않고는, 등을 찢고 자라는 날개의 고통과 번데기를 째고 날개가 다 마를 때까지의 시간을 견뎌내지 않고는, 무한한 창공과 맞닿을 수 없다.
대구에서 창작 작품을 만들 때 서울 대학로의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대구의 배우들이 예전처럼 수도권으로 무대를 옮기는 일 또한 여전하다. 그들은 더 큰 무대를 꿈꾸며 짐 가방을 꾸렸을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전히 문화적 인프라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모죽처럼 나비처럼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노력하면 빛을 낼 수 있는 여건이 대구에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까닭이다. 색다른 맛을 내기 위한 좀 더 실험적인 시도, 다양한 재료에 대한 고민, 후진 양성을 위한 노력 등이 함께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집단지성이 원활하게 발휘돼야 할 것이다.
지안 /뮤지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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