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보훈대상 영광의 주인공…"호국 영웅들의 넋,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매일신문사가 주최하고 대구지방보훈청이 후원하며 LG경북협의회와 한국전력대구경북지역본부가 협찬하는 '2015 매일보훈대상 시상식'이 16일 오후 3시 정부대구지방합동청사 3층 대구지방보훈청교육장에서 열린다. 매일보훈대상의 수상자는 5월 15일 접수마감 후 5월 22일 대구시 정남수 복지정책관, 경상북도 권기섭 사회복지과장, 대구지방보훈청 김차범 보훈과장, 영남이공대 김태열 교수, 매일신문사 이진화 문화사업국장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거쳐 대구'경북 각 5명, 총 10명이 선정됐다.

노경석 기자 nks@msnet.co.kr

◆김진원(85'북구 대천로)

김 씨는 1948년 육군에 입대해 근무하던 중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에 대항해 곳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전투에서 승리한 공을 인정받아 전쟁 중에도 충무 무공훈장을 받아 일계급 특진하면서 소대장에 임명됐다. 이후 총상을 입고 중공군에게 체포돼 포로로 북한 수용소에서 3년간 억류됐다가 1953년 휴전으로 석방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김 씨에게 정부는 1956년 무공 포장을 수여했으며 2013년에는 호국영웅기장을 전달했다.

김 씨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6'25참전유공자회 대구북구지회장을 맡아 생계가 어려운 참전자에게 자비를 지원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김진해(83'여'북구 검단로)

김 씨는 6'25전쟁 때 왼쪽 팔 관통상을 입고 명예 제대한 권태호 씨와 1954년 결혼했다. 불편한 몸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남편의 뜻을 따라 김 씨는 대구로 옮겨와 궂은 일을 하며 남편과 자녀를 돌봤다. 어렵게 사회생활을 하던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7년 동안 뒷바라지하는 등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해왔다. 2003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김 씨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봉사활동에 매진했다. 특히 같은 처지의 미망인이 어려울 때에는 가장 먼저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 이 같은 '정'에 감동한 동료들의 추천으로 2013년 보훈처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최종팔(65'동구 팔공로)

6'25전쟁이 일어나자 전선으로 자진 입대했다가 순국한 최남구 씨의 자녀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썼다. 1992년 창설한 전몰군경6'25유자녀회에서 생활이 어려운 회원을 돕고자 직접 자금을 마련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00년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동구지회장으로 임명돼 유족회의 발전과 회원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한청수(70'북구 칠성1가)

한 씨는 1966년 육군으로 입대해 베트남 파병 후 1968년 병장으로 명예 제대했고, 1급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1970년대 들어 칠성동 청소년 선도위원, 북부경찰서 방범위원 등을 맡아 30년이 넘도록 지역을 위해 봉사했다. 특히 한 씨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다양한 기부활동을 펼쳤다. 경로당과 상이군경회 등에 물품을 기증했으며 자라는 청소년을 위한 장학금도 수차례 지원했다.

◆허경성(88'북구 대구체육관로)

1927년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난 허 씨는 광복 이후 1946년 대구에 정착해 모친과 동생 3명의 생활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아왔다. 항일 구국운동을 했던 조부의 명예를 높이 여기며 2007년 광복회 중앙대의원에 선출된 뒤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회원 상호 간 상부상조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광복회의 기강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2005년 구미시가 추진하는 민족정기 선양 사업을 위해 자신의 소유인 토지 약 1천980㎡(600평)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김호건(65'문경시 가은읍)

김 씨는 1971년 육군에 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한 뒤 1973년 제대했다. 이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았다. 1981년에는 정부로부터 산업포장을 받았으며, 이때 받은 상금 100만원을 기금으로 '은성장학회'를 설립했다. 현재까지 문경시 일대 초'중'고등학생 469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2008년에는 문경 지역 독립유공자의 사당건립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자비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2011년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경북지부 문경시지회장으로 임명돼 전우와 미망인 돕기 운동을 펼쳤다.

◆백일금(77'여'영천시 모란1길)

백일금 씨의 남편인 경찰공무원 황해봉 씨는 1981년 사건 현장에서 전복사고로 인해 전신이 마비됐다. 이후 백 씨는 7년간 남편의 손발로 살았으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수발도 묵묵히 해냈다. 미망인이 된 후에는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영천시지회 지도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회원의 모범이 된 백 씨에게 영천시는 2006년 표창장을 수여했다. 또 2012년 백 씨는 자녀를 훌륭히 성장시킨 공을 인정받아 미망인회 본회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신인항(73'영천시 창신1길)

신 씨는 1966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2002년 대령으로 퇴임했다. 이후 청소년들에게 애국심과 국가안보정신을 배양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자유총연맹 대구지부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나라 사랑 및 안보교육' 강사를 맡고 있으며 대학교에서도 정치학과, 국민윤리학을 강의하며 애국심을 드높이는 노력을 했다.

◆정승윤(74'영양군 수비면)

정 씨는 6'25전쟁 유자녀로 1963년 영양군청에 입사해 33년간 공직생활을 하며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땀 흘려 일했다. 1998년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영양군지회장으로 부임한 뒤 2003년 보훈회관 건립에 앞장섰으며 2004년 6'25참전유공자기념탑 건립 추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12년 국가보훈대상자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에 앞장서는 등 국가유공자 복리증진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최봉소(82'포항시 북구)

최 씨는 1950년 6'25전쟁 직후 17세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지원 입대해 포항지구 안강 기계 전투에 참전했다. 참전 용사로서 2003년부터 '6'25 바로 알리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2007년에는 호국사진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4년 학도의용군회 포항시지회장을 맡았으며 2009년에는 경상북도 지부장을 역임했다. 특히 2011년 6'25참전유공자회 포항지회장으로서 생활이 어려운 회원들을 돌보는 데 앞장섰으며 각종 호국안보행사에 매년 참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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