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베로니카 스트랭 지음/ 하윤숙 옮김/ 반니 펴냄
인간은 물을 숭배했고, 사랑했고, 두려워했다. 물을 얻기 위해 협력했고, 싸웠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었으나 때로는 엄청난 파괴자였다. 그래서 인류는 물을 영원한 생명으로 숭배하는 동시에 파멸의 존재로 인식하기도 했다.
지구가 품고 있는 모든 생명의 기원에 물이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우리 존재 자체가 물이기도 하다. 몸속에서 물은 피를 운반하고, 뼈와 살에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고, 생각이 작동할 수 있도록 +전하와 -전하를 운반한다. 노폐물을 씻어내고, 피부를 부드럽게 하며, 각막이 마르지 않도록 수분을 공급한다. 몸속에서 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사람은 금세 피로와 스트레스를 느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능을 상실하고 결국 죽고 만다. 유기체 안에서만 물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물은 종교적 믿음 속에서도 흐르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습 속에서도 흐른다.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은 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인간이 물을 어떻게 체험하고, 어떤 믿음과 이해를 갖고 있는지, 어떻게 물을 이용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물은 무한정 써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없이 많고, 영원하리라 믿었기에 소중하게 다룰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오염, 모든 쓰레기를 정화해 줄 것이라고 믿었으며, 물로부터 모든 것을, 영원히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지금, 지구의 많은 동식물과 사람들이 물 부족 혹은 물 오염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물의 엄청난 위력을 깨닫게 되자 더 많은 물을 확보하고 통제하려 들면서 골고루 편재해 있던 물이 한쪽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물을 통해 인류가 일으킨 가장 큰 변화는 농경이었다. 농경의 시작으로 인류는 물에 대해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났고, 사회와 정치조직이 발생했다. 권력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농경과 깊은 관계가 있다. 물을 통제하고 이용함으로써 인간은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관개기술로 물을 조종하는 능력을 키우면서 인간은 다른 종에 대해 큰 지배력을 확보했다. 물을 길들이려는, 혹은 조절하려는 관개기술의 발달은 인간 사회의 지도자들을 신격화시켰다. 관개사업을 통해 사막을 비옥한 토지로 만드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권력자를 창조의 화신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치수를 통해 권력을 안정시킨 역사적 사례는 많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제1왕조를 창건한 메네스 왕은 나일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댐을 건설한 파라오가 되었다. 중국의 우 황제는 황하의 물길을 바꾸어 권위를 강화했다. 물 덕분에 사회가 발전하면서 대륙과 대륙은 훨씬 가까워졌다. 사람과 물자는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삶의 질은 빠르게 개선되었다. 반면 권역별로 자족적이던 문화는 더 상위 문화에 쉽게 포획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인간이 물을 통해 엄청난 풍요를 누리는 반면, 10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안정적인 물 공급을 받지 못하고, 20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위생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매일 1만 명에서 1만4천 명의 사람들이 수인성 질병으로 죽어간다. 물을 가둠으로써 흐르는 물의 양이 줄었고 오염물질이 씻겨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펌프로 지하수를 한껏 뽑아 쓰는 바람에 지표의 수위는 갈수록 낮아지고 오염은 강화된다. 물의 두 얼굴인 셈이다. 물의 양면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든 유기체는 물의 분해능력과 운반 능력에 기대어 살아간다. 같은 원리로 물은 오염물질을 운반하고 확산해 생명을 위협한다.
책은 물과 생명, 물과 인간의 관계, 물의 여정, 물을 통해 쌓은 부와 권력, 물을 통해 일으킨 산업, 물을 지키려는 사람들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과 생명 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조목조목 보여준 다음 지은이는 물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해서 승자가 독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제한된 물을 승자가 독점해 부와 권력을 쌓아갈 경우 패자는 생명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서 승자독식 현상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90쪽, 1만 5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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